대구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에서 족보를 전문으로 인쇄해 온 '대보사'는 우리 시대 족보의 흐름과 변천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1972년 창업주 박노택 회장(1대)이 중구 서성로에 세운 '서성인쇄사'가 근간인 대보사는 1981년 국내 최초로 한자 타자기를 도입, 족보조판 시스템을 갖추면서 족보 전문인쇄소의 탄생을 알렸다. 이를 시작으로 3대가 33년간 3천500여 종의 족보를 출판했고,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 족보 등 시대의 변화를 아우르면서 족보 인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지부터 모바일 족보까지
대보사 건물 2층 사무실은 도서관 같은 모습이었다. 사무실 사방 벽이 온통 족보로 빼곡했다. 사무실 탁자에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앉아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외에도 여기저기 어르신들이 족보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보사가 처음 족보를 인쇄할 당시엔 옥편에서도 찾기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곤욕을 겪기도 했다. 없는 활자를 해결해 조판하는 것과 처음 보는 한자를 교정하는 데 고생을 했다. 한자 타자기가 도입되기 전까지 한자 활자 문제는 여간 큰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대보사는 1986년 컴퓨터 전용 족보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고, 1999년에 이르러서는 모든 공정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 이 시기가 대보사의 최고 전성기였다.
세상이 변하면서 대보사에도 위기가 닥쳐왔다. 전자 족보가 전통 족보를 위협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이때 구원 등판한 이가 있었으니 박도규(66'2대) 대표의 아들인 박종찬(35'3대) 대보사 기획실장이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박 실장은 족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한다며 2004년 전자족보 출판시스템을 자체 개발, 단순 출판으로만 그치던 족보를 IT와 접목했다. 2007년에는 전자족보연구소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2009년에는 웹 사업부를 만들어 현대화된 족보의 계보를 이었고, 현재는 인터넷 족보와 모바일 족보까지 제작하고 있다.
◆족보가 모이면 역사
아버지에 이어 33년간 족보를 만들어 온 박 대표는 1990년대 초 자신을 찾아온 밀양 박씨 절도사공파 후손 '박 대령'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공군 대령이었던 박 씨는 박 대표를 찾아와 자신의 장군 진급 전 축하연에서 박씨 성을 가진 한 장성으로부터 "무슨 파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힌 사연을 전하며 이후 뿌리 찾기에 나서게 됐으니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밀양 박씨인 것만 알았던 박 대령은 뿌리를 찾느라 대보사는 물론이고 국내의 밀양 박씨 족보는 죄다 뒤졌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낸 결과 자신이 누구의 후손이며 몇 세손인지를 알게 됐다고 기뻐했다는 것. 조선 말기 궁중의였던 조상을 찾아낸 박 대령은 종친회로부터 인정받아 족보에 이름을 올렸고, 밀양 박씨의 파별 족보까지 줄줄 꿰게 되면서 이후에는 종친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박 대표는 "박 대령이 뿌리 찾기에 어찌나 열성이었는지 당시 밀양 박씨 사이에서 박 대령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반면 안타까운 경우도 더러 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족보를 뒤져도 자신의 조상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그렇다. 또 족보를 만들면서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을 아껴야 하기도 한다. 박종우 대보사 상무는 "한 남성이 자신의 뿌리를 찾았다며 기쁜 마음에 족보를 만들러 왔지만, 정작 해당 문중에 확인해보면 족보상에 없는 아들이었다"며 "이런 경우 첩의 아들이거나, 문중의 머슴이었을 가능성이 있어 난감했다"고 했다.
뿌리를 찾고, 누구의 후손인지를 따지는 게 고리타분하게 또는 전근대 유물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보사 관계자들은 "족보의 또 다른 이름은 귀감(龜鑑)"이라고 입을 모은다. 귀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족보가 각 가문의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족보는 '나'의 존재와 뿌리, 가문의 역사와 조상의 발자취를 알려준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족보의 종류
1.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 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
2. 족보(族譜)'종보(宗譜): 본관을 단위로 역사와 집안의 계통을 수록.
3. 세보(世譜)'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을 같이 수록. 동보(同譜), 합보(合譜)라고도 함.
4. 파보(派譜)'지보(支譜): 시조로부터 시작해서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슬, 업적 등을 수록한 책.
5. 가승보(家承譜): 본인을 중심으로 수록. 시조부터 자기 윗대와 아랫대에 이르기까지의 이름과 업적, 전설,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족보 편찬의 기본.
6.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이름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
7. 가보(家譜)'가첩(家牒): 자기 일가의 직계에 한하여 발췌한 세계표(世系表).
8.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함. 국내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모아놓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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