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머니, 올 추석도 비상입니다" 119대원 귀향 별따기

외로움 사건 되레 더 많아…하루 1만 건 신고 평일 2배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대구 북부소방서 119구조대원 이호욱(29) 소방사는 지난해 추석 전날인 9월 18일 오전 고향인 인천에 올라갔다가 2시간 만에 대구로 발길을 돌렸다. 같은 날 오후 6시부터 근무를 서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쪼개 '2시간 귀향'을 한 이 소방사는 추석 당일인 19일에도 야간 근무를 했다. 다음날 오전 7시쯤 북구 산격대교에서 20대 남성이 금호강으로 투신, 퇴근을 미루고 수심 3m를 4시간 동안 수색해 시신을 겨우 수습했다. 이 소방사는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에 사건 사고를 많이 접하다 보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대원이 많다"고 했다.

119구조'구급대원들에게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오히려 사건'사고가 평소보다 많은 탓에 대원들은 더욱 긴장을 하고 근무를 선다. 귀향'귀갓길 교통사고는 물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독사하는 노인도 유독 많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국회의원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사흘간 소방서에 신고된 하루 평균 구조'구급 상황은 1만389건(구조 2천819건, 구급 7천570건)으로 지난해 전체 평균 5천217건(구조 1천96건, 구급 4천121건)의 2배 수준이었다. 지난 3년간 추석 연휴에 발생한 구조'구급 상황은 하루 평균 9천251건으로 같은 기간 설 연휴 7천239건의 127%에 이른다.

4년 전 고향을 뒤로하고 대구에서 근무한 후부터 이 소방사는 귀향을 꿈도 못 꿨다. 인천 한 소방서 화재진압대원으로 2년째 근무하는 동생도 마찬가지다. 이들 형제는 모두 4년째 벌초를 하러 가지도 못했다. 이 소방사는 "서로의 지역에서 큰 사고라도 나면 형제가 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확인한다. 명절에도 얼굴조차 못 볼 때가 잦아 전화로만 인사했다"고 했다.

형제의 아버지 이민재(61) 씨도 인천 한 소방센터의 의용소방대장이다. 호욱 씨 형제는 2002년 인천 부평 다가구주택 가스폭발 사고 당시 건축업 근무 경력을 살려 현장 구조를 지휘했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 119대원이 됐다. 이 소방사는 "아버지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아시지만 만나기 어려운 사실을 늘 안타까워하신다"고 말했다.

올 추석에 이 소방사는 4년 만에 제대로 된 추석 연휴를 맞는다. 6일 주간 근무를 마친 뒤 7일과 8일 연가를 내 쉰다. 9일과 10일은 비번이라 모두 나흘을 쉰다. 그는 "남은 팀원 4명이 근무하기에는 어려울 텐데도 부모님께 손주를 보여드리라며 근무를 빼 준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아내와 10개월 된 딸을 데리고 인천 고향집과 대구의 처가를 모두 들러야겠다"고 했다. 이 씨는 "올해는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반가워하셨다"며 "대신 동생은 추석에도 근무한다. 명절마다 부모님이 언제쯤 두 자식을 한자리에서 보겠느냐며 서운해하시니 죄송스럽다"고 했다.

이 소방사의 부인 조진영(30) 씨는 남편과 동료 대원을 생각하며 올 추석 무탈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조 씨는 "지난 추석과 설 연휴에도 근무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퇴근 후에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남편이 안쓰러웠다"며 "올 추석 연휴에는 사고로 마음고생하는 분도 없고 119대원들도 덜 수고스럽도록 부디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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