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선거 때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하던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 여론 청취에 나섰다. 자주는 아니라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지역 정치권에 '민원인의 날' 바람이 불고 있다.
◆동네마다 열리는 국회
지역 국회의원이 사무실로 찾아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주민 소통 행사가 인기다.
가장 유명한 경우는 2010년부터 매월 2회 '민원인의 날'을 운영하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서울 양천을)이다.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대구 수성을)은 김 의원을 벤치마킹했다. 주 의원이 '민원인의 날'을 준비하는 데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주민들이 쉽게 들르도록 사무실도 잘 보이는 곳으로 이전했다.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일 평균 40~50건이 쇄도한다.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에 개방하는데, 주 의원을 만나려면 첫째 주에 가면 된다.
주 의원은 "20년째 같은 휴대전화 번호를 써서 누구든지 연락하면 만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제 그저 얼굴을 구경하러 오는 분들도 계신다. 가벼운 법률상담을 할 때면 변호사여서 다행이다 싶다"고 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군위의성청송)은 지난해 6월 말부터 '찾아가는 국회'를 열었다. 3곳의 지역구를 순회하는 김 의원은 3배로 바쁘다. 행사 3, 4일 전 때와 장소를 알리는 단체 문자를 보내고 군청 민원실이나 의원 사무실에서 주민들을 만난다.
김 의원은 "멧돼지'고라니 등 야생 동물을 퇴치해 달라거나, 가격이 폭락한 마늘'양파를 사 달라는 등 농어촌 현실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당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으면서 잠정 중단됐지만, 조만간 재개할 계획이다.
주민 소통의 시초 격은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대구 북을)의 등산모임이다. 서 의원은 2008년부터 매주 일요일 오전 8시 운암지 앞에서 도서관 사서'영양사'보건교사 등 비정규직 근로자와 함지산을 오르고 있다. 외국 출장과 겹치면 토요일을 이용한다. 이달 21일 모임이 354회째였다고 한다. 등산 한 시간쯤 전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서 의원을 만날 수 있다.
서 의원은 "지역 주민과 소통할 방법을 고민했다. 잠깐 악수하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진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더라"고 말했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김천)도 '등산파'로, 매주 토요일 달봉산에서 만날 수 있다.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을)은 매월 셋째 주 국회 일정이 없는 날이면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주민 소통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행사를 준비하는 의원들도 적잖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병)은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2개월간 준비한 '지역주민과의 만남' 행사를 열 계획이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포항남울릉)은 타운미팅 형식의 행사를 기획 중이다.
◆민원 백태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는 주민 가운데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정도로 크고 어려운 요청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을에 상수도를 놓아 달라거나, 진입 도로가 좁다거나, 불법 주차로 골머리를 앓는다는 등 시'구'군청 소관 업무인 경우다. 이런 민원은 기초'광역의원이 메모해뒀다가 지방의회를 통해 해결하거나, 소관 업무 부서와 협조해 현장에서 즉시 처리할 때가 많다.
하지만 고령의 유권자가 많은 경북지역, 특히 군 단위의 농어촌에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민원을 맞닥뜨리기 쉽다.
'국회의원은 아는 사람이 많으니 자녀 맞선을 보게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 '국회의원은 힘이 세니 아들이 공무원이 될 수 있게 해 달라' 등의 요구가 그 예다.
대구지역 한 초선 의원은 "한 주민이 찾아와 아들을 현대자동차에 취직시켜 달라고 했다. 이런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고 했다.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주 의원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한 어르신이 오셔서 15년 전 숨진 아들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군대 내 가혹행위로 아들이 자살하게 됐다는 것이었는데, 최근 군 인권 문제가 대두하면서 그분도 힘을 얻은 것 같다.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다수 국민은 정치를 불신하고 있고, 국회 문턱은 여전히 높다고 생각한다"며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가 싹을 틔우는 것은 다행이지만, 주민 접촉 행사가 선거용이라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행사가 일관되게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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