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못난 조상

조선 인조 때 영의정에까지 오른 김자점은 단종 복위운동을 벌인 성삼문 등 사육신을 배반한 김질의 후손이다. 인조반정 공신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병자호란 때 도원수로서 청나라군을 저지하지 않고 전투를 회피했다는 비난 속에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하지만 인조의 비호와 청나라의 위세를 빌려 권력에 더욱 밀착되었다. 효종이 즉위하면서 입지가 크게 흔들리자 북벌계획을 청나라에 누설한 죄로 다시 유배 갔다가 아들의 역모사건으로 결국 처형당했다. 독립운동가요 민족지도자였던 백범 김구 선생은 바로 김자점의 방계 후손이다. 김구 선생 집안이 멸문지화를 피해 양반의 신분을 감춘 채 황해도 해주로 숨어들어 오랜 세월 평민으로 살아온 까닭이다. 김자점이라는 못난 선조가 없었더라면 김구라는 위인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조선 후기의 무신인 선천부사 김익순은 여러 대에 걸쳐 벼슬을 한 사대부가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북방에서 홍경래의 난이 터지자 반군과 교전을 했지만 패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더구나 홍경래의 거병이 실패로 돌아가자 죄를 모면하려고 농민을 돈으로 매수해 반군 장수의 목을 베어오게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반대역죄로 참수를 당했다. 그의 손자가 바로 방랑시인 김삿갓 즉 김병연이다. 집안의 내력을 모르고 산골에 묻혀 자란 김병연이 강원도 영월에서 열린 향시에 응했는데, 하필이면 과제가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를 논하는 것이었다.

일필휘지로 장원급제했지만 어머니에게 조부의 얘기를 들은 김병연은 다시는 하늘을 볼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오른다. 홍경래의 난이 없었고, 조부가 선천부사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풍운의 역사는 충신과 반역자를 함께 양산했으며, 어떠한 명문 집안이든 그 폭풍과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에 대한 장면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배설 장군의 후손들이 "명량대첩에 참전하지도 않았는데, 영화에서 역적으로 표현하는 등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아무리 창작물이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 3명 중 1명은 본 영화 장면의 역사왜곡은 사뭇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문과 조상을 중요시하는 우리 정서에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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