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해 '도서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답을 내린 곳이 있다. 미국 북서부 중심도시, 시애틀이다. 시애틀은 1998년 '모두를 위한 도서관'을 목표로 2천900여억원을 투입한 '도서관 혁명'에 도전했다. 당시 시애틀에는 1890년 문을 연 중앙도서관과 22개의 분관이 있었지만 1990년대 경제부흥과 함께 끓어오른 시민들의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시애틀시는 시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중앙도서관 건립을 포함한 대대적인 도서관 체계 재정비를 결정했다.
도서관 혁명을 시작한 지 16년이 흐른 지금, 인구 65만 명의 시애틀은 대구시(250만 명)에 비하면 작은 도시이지만 중앙도서관을 포함한 27개(대구 모두 30개)의 촘촘한 도서관 체계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앙도서관이 모든 시민의 지적 욕구를 파악해 충족시키는 도서관이라면, 26개의 분관은 지역민의 생활을 밀착 지원하는 마을 도서관이다.
◆누구나 가보고 싶은 도서관
지난달 찾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 1000번지. 도심 한가운데에 온통 유리로 덮인 한 건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이다. 총 11층의 건물면적만 3천400㎡의 대규모 중앙도서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해 지난 2004년 5월 문을 열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건축물'로도 꼽힌 이곳 도서관은 어느덧 시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불러모으는 시애틀의 랜드마크가 됐다.
실제로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한 중앙도서관 입구 앞에는 도서관을 구경하러 온 다수의 관광객이 보였다, 영국에서 왔다는 마이클 로리(30) 씨는 "시애틀 관광책자에 도서관이 소개되어 있어서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본 중앙도서관은 종이를 아무렇게나 구겨 접은 듯한 독특한 외관만으로도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5번가와 연결된 3층 입구로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도서관 실내 모습은 호기심을 이내 '이용해보고 싶다'는 설렘으로 바꾸었다. 15m 높이의 탁 트인 천장과 널찍한 공간, 비스듬히 누운 유리창 벽면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그 아래 놓여 있는 편안한 의자와 은은한 조명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전시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쪽에는 소설과 DVD'신문 등 가볍게 살펴볼 수 있는 장서들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도서관에 마련된 체스나 보드게임을 하며 한낮의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중앙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들이 4개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중앙도서관 사서 짐(Jim) 씨는 "도서관은 책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이나 호기심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설'장서'사서 3박자 고루 갖춰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 이름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도서관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그래서인지 중앙도서관은 공간마다 도서관에 꼭 필요한 시설'장서'사서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특히 도서관 6층부터 9층까지 4개 층을 하나로 연결한 회전형 서고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도 아무런 불편 없이 서재를 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서고에는 소설을 제외한 비소설과 참고문서 84만여 권, 정부문서'잡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서고 바닥에는 듀이십진법에 따라 000부터 999에 이르는 분류번호가 크게 붙어 있어 원하는 장서를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회전 서고 각 층에 있는 안내데스크에는 사람들의 장서 이용을 도와줄 전문 사서가 항상 있었다. 이들 사서들은 도서 추천은 물론 해당 층 주제와 관련한 추천도서 목록 작성과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다고 했다. 8층 예술과 음악, 문학 담당 부서의 사서 엘리자베스 윈서 씨는 "최근에는 지역 디자인회사와 함께하는 디자인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련 도서를 도서관에 전시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보관된 장서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사서라는 통로를 통해 장서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회전형 서고뿐만 아니라 중앙도서관에는 어린이실'청소년실'세계언어실'시애틀 역사관 등 코너마다 안내데스크와 사서가 마련돼 있다. 장애인실에는 수화가 가능한 사서까지 있었다. 장애인 전담 사서 타일러 보스마 씨는 "도서관 이용법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필요할 땐 수화로 직접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민 한 명 한 명을 위한 도서관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중앙도서관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간 방문객 수만 18만 명을 넘을 정도. 1998년부터 도서관에서 하는 문학 프로그램에 줄곧 참여하고 있다는 라우라 맥라네(70) 씨는 도서관의 인기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앙도서관은 우리 시애틀의 상징이에요. 모든 시민들이 지적인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또 그러한 호기심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죠. 도서관이 있어 시애틀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어요."
◆분관은 지역 맞춤형 지식 창고
시애틀에는 우리나라의 구립도서관과 같은 26개의 분관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인 더글래스 트루스 분관은 중앙도서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이곳 도서관의 나이는 올해로 100살이다. 이곳 역시 '모두를 위한 도서관' 프로젝트의 하나로 재건축되어 2006년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곳 도서관은 시애틀의 빈민층에 속하는 아프리칸계 미국인(흑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하 1층에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콜렉션'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8천625권의 관련 도서가 보관되어 있다. 이곳 사서 마이니크 아담스 씨는 "도서관은 이용자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여기는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가 많아 거기에 맞게 프로그램과 장서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제공하는 지역 맞춤형 서비스의 또 하나는 '숙제 도우미' 프로그램이다. 시애틀은 도서관 프로그램의 하나로 11개 분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와 학생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다. 더글래스 트루스 분관도 그중 하나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도서관에서는 숙제 도우미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고,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혼자 도서관에 온 아이도 있었다. 2년째 숙제 도우미를 하고 있다는 마리 콜러(71) 씨는 "이 지역은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에서 이민 온 가족이 많은데 부모들이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아이들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도서관은 이들이 미국 시민으로 잘 성장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끌어주고 도와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도서관을 통해 '시민의 힘'을 키우는 미국의 도서관 문화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미국 시애틀에서 글'사진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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