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어진 사람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어진 사람 - 백무산(1954~ )

어질다는 말

그 사람 참 어질어, 라는 말

그 한마디면 대충 통하던 말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사람 어진 사람이야, 그러면 대충 끄덕이던 말

집안 따질 일이며 혼처 정할 일이며 흉허물 들출 일에도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말

나머진 대충 덮어도 탈이 없던 말

시장기에 내놓은 메밀묵맛 같은 사람

조금 비켜서 있는 듯해도

말끝이 흐려 어눌한 듯해도

누구든 드나들수록 숭숭 바람 타는 사람

보리밥 숭늉맛 같은 사람

뒤에서 우두커니 흐린 듯해도 끝이 공정한 사람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왠지 슬픔이 묻어 있는 사람

반쯤 열린 사립문 같은 사람

아홉이 모자라도 사람 같은 사람

아버지들 의논을 끝내던 그 말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어질기만 해서 사람 노릇 못해,

그럴 때만 쓰는 말

  -시집 , 창비, 2012.

-----------------------------

'어질다'는 말은 맹자의 사단(四端)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인에 해당하는 말이다. 인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대상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가리킨다. 전 시대에는 어질다, 용하다, 착하다, 진국이다 등의 말도 자주 들을 수 있었고, 또 그런 사람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요즘 그런 사람 찾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세상이 각박해진 탓이리라. 시인은 그런 '어진 사람'을 찾기 위해 대낮에 횃불을 들고 사람을 찾던 그리스의 철학자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시를 썼으리라. 그 많던 어진 사람들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민의힘 내부에서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은 장 대표를 중심으로 결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 현대, 롯데 등 유통 3사가 대구경북 지역에 대형 아울렛 매장을 잇따라 개장할 예정으로, 롯데쇼핑의 '타임빌라스 수성점'이 2027년,...
대구 지역 대학들이 정부의 국가장학금 Ⅱ유형 폐지에 따라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장기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부담이 심각한 상황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