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족의 기원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며 집을 부를 때도 우리처럼 '우리집'이라고 한다. '정'이라는 말도 영어나 태국어에는 없지만 꼭 같은 의미의 단어가 있다. 그래서 미얀마에 살면서 한국의 이웃 또는 형제 같다고 느끼는 것이 단지 모습이 비슷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나 카렌족은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문화까지도 비슷한 점이 많다.
버마족이 고비사막에 살다가 2천500년 전 티베트로 해서 바간과 양곤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카렌족은 모래가 흐르는 강가 만주지방에서 살다가 운남성으로 해서 태국 북부와 미얀마 중부까지 흘러왔다. 그래서 많은 수가 살고 있는 샨(타이야이)족과 더불어 카렌족의 많은 수가 미얀마의 가장 북쪽 카친주부터 샨주, 그리고 붉은 카렌의 나라 카야카렌 몽주까지 걸쳐 있다. 몽주는 몽족의 주이지만 실제 인구수로 보면 카렌족이 더 많이 살고 있다.
또한 동남아 대부분의 종족들은 4월 가장 더운 날을 새해로 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란의 물축제인 '송크란'을 벌인다. 이때부터 두어 주 잔치와 놀이를 하며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놀다가 농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카렌족은 우리와 비슷하게 1월 둘째 주가 설날이다. 건기에다 가장 추운 날에 해당하지만, 이때의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또한 미얀마에서는 10월 20일부터 27일까지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가족의 주간'이 있다.
그래서 이날은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와 함께 식사를 하며 절에도 간다. 스님들은 과자를 좋아하고 담배도 피우는데, 이 나라에서 술은 금기이지만 담배는 괜찮다. 그래서 외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스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태국에서는 국왕의 생일, 왕비의 생일과 어머니날은 있지만 가족의 날 같은 것은 없다. 미얀마는 가족의 주간에는 대부분의 관공서와 학교들이 쉬고 마지막 주 월요일에 개학한다.
◆3일葬
백열전구 한 개와 조그만 형광등 하나가 어둑하게 넓은 마당을 밝히고 옹기종기 마을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몰려 있다. 포커를 하는 곳, 동전을 튕겨 앞뒷면을 맞히는 곳, 아이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뽑기를 하여 같은 그림을 맞힌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동전을 두 배로 받아간다. 며칠 전에 결혼을 하고 건넛마을에서 선생을 하는 솜차이가 스무 살 그의 새색시와 함께 그림판을 준비해 와서 진행을 한다. 그야말로 마당에는 왁자하게 한바탕 도박판이 벌어져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주위에 수많은 종족이 살고 있는데 그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자정이 넘어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렇게 마당에는 밤새 사람들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마치 1970, 80년대 한국의 어느 시골마을에 와 있는 듯하다.
마당 옆 화로 위에는 커다란 양은 솥이 걸려 있고, 그 안에는 닭죽이 끓고 있으며 허기진 사람들은 대충 서서 한 그릇씩 배를 채운다. 다른 반찬은 없으며 커피 한잔도 빠뜨리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조하는 곳 같은 것은 따로 없고 관 주위에 엄청난 촛불을 켜두고, 밤새 젊은이들이 앉아 타들어가는 초를 갈아준다. 아마도 냄새를 막기 위한 그들의 지혜인 듯하다.
인근 몽족 마을에서는 8일장을 지내며 관 뚜껑을 내내 열어놓고 향을 진하게 피우고, 옆에서 자손과 마을 사람들이 나뭇잎 같은 것을 종일 흔든다. 역시 도박 같은 것을 하며 밤을 새우는 사람이 많으며 돼지고깃국과 밥, 녹차, 커피 등을 주고, 저녁 새참까지 나온다.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면 촛불을 켜고 잠깐 앉아 추억을 하다 자리를 옮긴다. 마을에 가톨릭교회와 기독교회가 두 군데 있는데, 아잔(신부나 목사)은 며칠 전 결혼식 때는 보이더니 오늘 밤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대충 걸리는 대로 자고 마당은 밤새 포커판으로 왁자하다. 다음 날도 아이들이 옆에 앉아 계속해서 많은 초를 태운다. 오후부터 마당에는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일부는 관 주위에 앉아 망자를 위해 계속해서 느린 가락의 노래를 부른다.
◆엄마 안녕!
얼마 전 오바또에서 근무하는 24살 청년의 집에 상이 나 가본 적이 있다. 평생 바람과 물을 벗 삼아 사는 이 오지 마을에서 무슨 까닭이 있어서인지 그의 엄마는 41세에 자살을 한 것이었다. 그 뒤 어느 날인가 술에 취한 청년이 나를 보더니 오늘따라 엄마가 보고 싶다고 벌판에 서서 슬픈 눈망울을 지었다. 특별한 음식 같은 것은 없었고, 사람들은 밤새 볶은 콩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평생 등골이 휘어지도록 그렇게 일만 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뒷동산 산모롱이로 스미어, 한평생 물먹은 그녀의 삶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삼일 뒤에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하는데 사람들은 술을 준비해서 간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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