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굿바이, 신해철

주변에 보면 이런 사람 꼭 있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그저 그런데 후배들 사이에서는 무슨 대사상가처럼 존경과 흠모를 한몸에 받는 사람. 내가 추억하는 신해철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아직 부모에게 대들기에는 여리고, 그렇다고 부모의 논리를 수용하기에는 건방졌던 사춘기 시절, 신해철의 등장은 수많은 소년에게 그 적당한 타협점을 제시해 준 대사건이었다. "저 형처럼 일단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를 간 다음, 밴드해서 대학가요제에 나가자!" 이 글을 읽는 1970년대생들, 기억하지? 우리 그렇게 맹세했잖아. 대부분은 결국 명문대도 못 가고, 밴드도 못했지만.

그가 노골적으로 중학생 신도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2집 앨범에서부터였다. 그는 이 앨범에서부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안한 음악가의 길을 가는' 자신을 고해하고 동정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보충수업에 시달리던 우리에게는 고행의 길을 걷는 순교자의 모습처럼 비장하게 비쳐진다. "은행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도저히 명문대생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우리 중 일부가 담배를 꼬나물고 고교 밴드를 결성하자 그는 넥스트 2집으로 화답한다.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그는 또 덧붙인다.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믿기 어렵겠지만, 이 가사가 그때는 정말 천상의 계시처럼 우리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갔다.

몇 년 뒤, 평범한 대학생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신해철의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하드밥에 빠져 있던 예쁜 동아리 누나에게 존재감 있는 후배가 되기 위해선, 신해철 따위를 들었다는 과거는 숨겨야 할 전과였기 때문이다. 나는 넥스트의 CD를 슬며시 서랍 속으로 밀어 넣고 그 자리에 존 콜트레인의 러브 슈프림을 전시했다. 정직하지 못했던 나는 그렇게 계속 나이를 먹어갔다.

2014년 10월 27일, 우리는 적당히 늙었는데, 신해철은 그가 처음 등장했던 소년의 모습 그대로 죽었다. 그의 음악은 촌스러워 보일 만큼 정직했고, 유치해 보일 만큼 끝끝내 젊었다. 우리 세대는 그런 벌거벗은 그를 열렬히 추종했고, 한심한 어른이 되면서는 -술에 취해 노래방에서 잠시 중학생 모드로 돌변할 때를 제외하곤- 서서히 그를 잊어갔다. 먼지를 털고 넥스트의 앨범을 다시 듣다 보니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는 꼭 해주고 싶어진다.

형이 가장 위대한 뮤지션은 아닐지도 몰라. 그렇지만 형이, 우리 세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음악가라는 건 확실해.

"굿바이 해철이형, 다음 세상에도 우리 친구로 태어나줘."

박지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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