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역사를 지워버린 애기봉 등탑 철거

기가 찰 노릇이다. 지난 15, 16일 기습적으로 이뤄진 김포 애기봉 등탑 철거가 해병대 2사단장의 단독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대통령도, 국방부 장관도 등탑 철거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국방부 장관은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됐고 대통령은 뒤늦게 보고를 받고 경위를 따졌다. 43년을 이어온 역사적 상징물을 아무 생각 없이 하루아침에 뭉개버린 일선 사단장의 무지도 놀랍지만, 사전 논의도 없이 이를 가능케 한 우리 군의 보고체계는 더 한심하다.

국방부는 애기봉 등탑 철거가 언론에 보도된 후에야 지난해 11월 군부대 주요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 결과 D급 판정을 받아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관광객 안전을 고려해 철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D급이란 '보수해서 쓸 수 있는 정도'지 철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화려한 불빛으로 북녘 땅을 비추던 애기봉 등탑이 가진 상징성을 고려하면 일선 사단장의 섣부른 철거 결정은 이해하기 힘들다.

애기봉은 경기도 김포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해발 155m의 야산 봉우리다. 등탑은 1971년 이곳 정상에 18m 높이로 세워졌다. 이후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그래도 북한 동포에게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오랜 세월을 꿋꿋이 버텨왔다. 정상전망대에선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즐겨 찾는다. 군사분계선과는 1.8㎞, 북한과는 불과 3㎞ 떨어져 있다. 불을 밝히면 멀리 개성에서도 볼 수 있어 북한이 대북선전시설이라며 철거를 요구하던 탑이다.

문제가 되자 김포시가 나서 2017년까지 애기봉 주변에 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높이 54m의 전망대도 설치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43년을 이어온, 낡고 허물어질 것 같은, 예의 그 등탑에 견줄 수 없다. 국보 1호 남대문을 태워 없애고 새로 엉터리 복원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새로 만든 전망대서 더 밝은 불을 밝히면 북한과 더 날카로운 시빗거리를 만들 뿐이다. 남북통일 이후에도 영원히 상징물로 남아 있어야 할 등탑을 너무도 쉽게 허물어 버린 것은 역사를 지운 것이나 다름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