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반 읽어주는 남자] 가을방학-가을방학

2006년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됐다. 저승의 지배자 '플루톤'(하데스)의 이름을 따서 '플루토'라 명명됐던, 우리 식으로는 저승의 신 '명왕'이 다스리는 명왕성. 행성의 지위를 잃더니 그 지칭마저 쓸쓸하고 무정한 왜소행성 '134340'이 돼 태양의 품 바깥 광활한 우주 어딘가로 내쳐졌다.

퇴출 이유가 '행성의 질량이 달보다도 작아서'였다니. 지구는 멀리서 있는 힘껏 빛을 내던 막냇동생을, 태양은 더는 자라지 못한 가여운 자식을 강제로 빼앗겨 무척 슬펐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탐사선이나 인공위성이 아직 닿지 않은 별, 지구에서는 별빛조차 희미한 별, 그러니 없어도 무방할 것 같은 저 별이 더 이상 태양계 행성이 아니라는 과학계의 발표에 살짝이나마 놀랐고, 혼란스러웠고, 아쉬웠지 않았던가. 탐사선 '뉴 호라이즌호'가 내년쯤 명왕성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이런 우리 마음을 좀 달래주려나.

명왕성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계절이 있다. '가을'이다. 보통 9~11월에 해당하는 가을은 기후상 일 평균기온이 20℃ 미만인 첫날부터 5도 미만이 되기 전까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요즘 가을의 시작은 점점 늦어지고, 겨울의 시작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가을 일수가 2달도 되지 않는 해가 곧 온다고 한다. 어느 날 과학자들이 '가을은 사계절에서 퇴출'이라고 발표한다면, 물론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을이라는 단어를 쓸 것이다. 하지만 세대와 세대를 지나 잊히면서 사어(死語)가 된다면, 가을이라는 단어가 담긴 시와 소설과 에세이는 문학이 아닌 고문학으로 연구실 책상 위에만 오른다면.

지금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가을을 주제로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기는 일, 죽을 때까지 가을을 주제로 한 작품을 원 없이 향유하는 일이다. 노래도 그중 하나다. 좀 더 나아가 가을을 아예 이름에 새긴 뮤지션들도 있다. 록 밴드 줄리아 하트와 언니네 이발관으로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정바비'와 록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와 우쿨렐레 피크닉에 몸담았던 보컬리스트 '계피'로 구성된 듀오 '가을방학'은 1집 가을방학(2010'사진)에 표제곡인 가을방학을 수록했다. 앞서 김종진과 전태관으로 구성된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1집 제목을 봄여름가을겨울(1988)로 정한 것은 물론, 앨범 구성도 사계순으로 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6번 트랙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가 바로 가을 테마다.

물론 너무 깊게 의미와 형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좋은 가을 노래는 참 많다. 김광석(및 동물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윤도현이 리메이크(1994)했고 실은 김현성 원작인 '가을 우체국 앞에서'(1992), 양희은의 '가을아침'(1991), 따로또같이의 '가을편지'(1979) 등 다들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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