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19대 국회가 큰 숙제를 떠안았다. 국회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로 줄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20대 총선 전까지 전국 62개 선거구를 조정해야 하는 혁명적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이 중 선거구를 축소해야 하는 13개 지역이 영'호남에 밀집되어 있어 지역주의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예상이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은 보통선거권의 취지에도 전적으로 부합한다. 즉 1인 1표의 소극적인 권리가 1표 1가치의 실질적인 권리로 개선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헌재의 결정을 양식 있게 따를 것인지는 지극히 의문스럽다. 그래서 선거구 획정 권한을 국회로부터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구 획정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즉 게임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드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이 헌재 결정의 취지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만무해 보인다. 오히려 자의적이고 기형적인 선거구 획정(게리맨더링, gerrymandering)이 횡행할 소지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한 보도에 따르면 중앙선관위 산하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여론이 69%에 달한다. 아울러 일부 전문가들의 제안처럼 제3의 독립 기구로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선수들이 아니라 관리자가 게임의 규칙을 만들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 총선에 임박해서 선거구를 거래하는 파행으로 19대 국회가 막을 내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표의 가치를 평등하게 실현하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거구 획정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현재 지역구 의석수(246)는 비례대표 의석수(54)보다 5배 가까이 많다. 이렇게 지역 대표가 직능 대표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비례대표 의원은 재공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임기 내내 다음에 출마할 지역구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충하고 후보 선출 권한을 국민들과 분점해야 한다. 이럴 경우 적어도 국회의석의 3분의 1은 비례대표로 구성하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면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영'호남에서 비연고정당 후보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문턱이 크게 낮아질 것이다. 아울러 지방정치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순기능을 할 것으로 예단된다. 물론 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구 의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과제가 자명하게 드러난다. 정당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면 시민사회와 학계의 에너지를 총력을 다해 집중할 도리밖에 없다.
개혁해야 할 또 하나의 선거제도는 선거구제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당선자의 득표 외에 모든 표를 사표로 만들어서 대표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반면 중선거구제는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이들 간의 불협화음을 조장하기 십상이다. 즉 양 선거구제는 각각 대표성과 효율성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중선거구제가 지역주의 처방에 보다 약효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영'호남에서 김부겸과 이정현이 국회에 입성하는데 더 효과적인 선거구제가 무엇인지 자문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지역주의는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서 완화해야 한다.
현행 선거구 획정 방식과 선거구제는 소위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민주화 4반세기를 경과한 작금에 구체제를 탈피하는 제도개혁은 오히려 늦은 감이 크다. 따라서 헌재 결정을 계기로 제도개혁에 성공한다면 장차 개헌의 초석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개혁도 외면하는 터에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회가 먼저 바뀌면 제왕적 대통령제도 따라 바뀔 동력이 생성된다. 이것이 무능한 19대 국회가 소생할 수 있는 중차대한 책무이자, 새로운 헌정체제로 나아가는 시발점이다.
장우영/대가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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