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껴 돌아봤더니,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안면은 있는 것 같은데 누군지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휴게소를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기억이 났다. 그녀는 형의 옛날 애인이었다. 형의 애인이라고 해서 얼굴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는 개별적으로 만난 일도 있었기 때문에 잘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때는 이미 두 사람이 결별을 한 뒤였다. 군에 입대한 형의 면회를 갔는데, '여자 친구가 편지 답장을 해주지 않는다'며 한 번 만나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면회에서 돌아온 나는 다음 날 바로 그녀를 만났다. 적잖이 놀라는 듯했다. 그러면서 불쾌하다는 투로 '둘 사이의 일에 왜 끼어드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마음이 변했으면 변했다고 해줘야 잊든 말든 할 것 아닙니까?"
지금이야 사랑의 맹세에 대해 이해를 하는 나이지만 그때는 스무 살 시절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배신이라고 믿던 순진한 때였다. 무슨 생각이 있어 답장을 안 해주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나는 그런 그녀가 몹시 못마땅했다. 비겁한 행동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상대방은 군대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데,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니? 매몰찬 행동이 따로 없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차라리 결별을 알리고 잊어 달라고 하는 게 당당한 일 아니던가.
군에서 맞는 이별은 참으로 아프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어 더욱 그렇다. 별로 슬프지 않은 영화를 보고도 눈물을 흘리며, 유치한 코미디를 보고도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그런 사람에게 이별이라니?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자에게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제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설 수밖에 없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현실에도 충실해지는 것이다.
하기야 만남과 헤어짐이란 것이 어디 본인들만의 뜻이던가. 다 인연인 것이다. 사랑은 결코 영원하기 어려우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젊은 날의 사랑은 특히나 그렇다. 막상 이별이 찾아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그 또한 세월 저편으로 멀어진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며,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온다. 그러니 이루지 못한 사랑에 너무 서러워할 필요는 없겠다. 그리움이 쌓여가는 계절이다. 지나간 모든 날은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데.
장삼철/(주)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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