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대를 생각함은/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해가 지고 바람이 바람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중에서)
지금부터 인문학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정책과 현장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을 찾아서 걸어가려 합니다. 정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제가 하고, 현장의 이야기는 세 사람의 친구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많은 인문학 정책 실험이 있었습니다. 인문학 관련 연수를 비롯해 다양한 인문학 특강, 학생들과 함께한 인문학 독서 나눔 마당 등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 100-100-1 프로젝트'도 기획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인문학 책 100권을 읽고, 100번 토론하며, 1권의 책 쓰기를 하는 단순명료한 목표를 정했습니다.
인문학을 교육정책으로 시도한다고 하니 몇 가지 반응이 나왔습니다. 첫째는 '인문학이 별거냐? 이미 다 하고 있는 것을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계속된 책읽기도 인문학입니다. 글쓰기도 인문학이고, 책 쓰기도 인문학이고, 토론도 인문학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행위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위 안에 담긴 내면적인 마음에 있습니다. 그렇게 인문학이 계속되었는데도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요? 왜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을까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질문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들의 표현처럼 인문학은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일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우린 너무 오랫동안 특별한 것을 찾아다니다가 정작 일상적인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은 사소한 일이지만 해가 지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생명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이 알고 보면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그래서 별거 아닌 일, 사소한 일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소중한 일임을 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관이 인문학을 주도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정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무조건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책이 만드는 풍경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정책은 더욱 발전합니다. 하지만 편견으로 정책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인문학을 관이 주도하면 안 된다는 것도 편견에 불과합니다. 인문학을 누군가가 독점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장 비인문학적인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관이든, 민이든, 학생이든, 교사든 모두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주도하느냐보다는 어떤 풍경을 만들면서 정책을 만들어가고 진행해갈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런 고민으로 번민하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을 담당한 내 자신조차도 인문학의 실체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랜 친구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잘 지내느냐'는 문자. 다른 표현은 아무것도 없는 그 짧은 문자에 오래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안부도 전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은 안부를 묻는 일입니다.
'안부'(安否)라는 말이 참 절묘합니다.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 정말 멋진 어휘입니다. 2015년을 맞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은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가 아닐는지요? 모두 편안하신지요? 앞으로 인문학은 계속해서 그 질문을 드릴 것입니다.
대구시교육청 한준희 장학사
◇인문학으로 교육을 봅니다 '꿈꾸는 인문학' 칼럼 연재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등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는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인류와 사회,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면서 인문학이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매일신문 교육팀은 그동안 연재해왔던 칼럼 '교육 느낌표'를 대신해 '꿈꾸는 인문학'을 매주 한 차례 선보입니다. 필진은 대구의 학교 인문학 교육을 이끌고 있는 대구시교육청 한준희 장학사와 경북여고 이주양, 대구여고 임채희, 송현여고 안병학 교사입니다. 이 칼럼은 인문학을 통해 학생, 학교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는 장이자 인문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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