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후섭의 '옛날 옛적에"] 이제 그 글씨에는

얘야, 처음 가졌던 깨끗한 마음을 잊어버리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 것 같니?

옛날에 한 가난한 선비가 약초를 팔아 겨우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어.

약초는 깊은 산에 많아서 이곳저곳 많이 헤매야 하였어.

약초의 종류가 많아지자 선비는 봉지마다 그 약초의 이름을 썼어. 그리고 구한 날짜와 장소까지 자세히 적었어.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 구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지.

또 약의 효능까지도 아는 대로 자세히 적었어.

'태백산 중턱에서 봄바람 이마에 맞으며 한나절 걸려 겨우 캤다. 산사람들은 만병에 다 좋다고 만병초(萬病草)라 한다고 했다. 이 약은 배 아픈 데에도 좋지만 머리 아픈 데에도 유용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봉지에 적은 것만 보아도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어.

어떤 봉지의 내용은 웃음이 나올 정도였어.

이윽고 장에 나가 앉아있으니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가만히 보고는 돈을 내고 봉지만 가져가려는 것이었어.

"그 봉지만 팔 수 없소?"

"아니, 약초는 그냥 두고 왜 봉지만 가져가는 것이오?"

선비가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어.

"네, 저는 약보다 이 글씨를 사고 싶소. 이 글씨는 정말 아름다운 글씨입니다. 어디에 가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도 다 나타나 있습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글씨입니다."

"네에?"

그러자 선비는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어.

'아니, 내 글씨를 사가려는 사람이 있다니! 약초를 캐려면 높은 산을 수없이 헤매야 하는데 글씨야 방에서 편안하게 얼마든지 쓸 수 있지.'

그 뒤, 선비는 그만 약은 캐러 가지 않고, 죽으라고 글씨만 썼어.

어디에서 무엇을 캤다는 내용은 없었어.

그리고는 장터에 나가 글씨를 진열해놓고 팔리기를 기다렸어.

아무도 사가지 않았어.

그때 마침 전에 글씨를 샀던 그 나그네가 지나갔어.

그런데 이번에는 글씨를 보고도 그냥 지나갔어.

"지난번에는 명필이라고 하더니 왜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십니까?"

그러자 나그네가 다시 한 번 글씨를 살펴보며 말했어.

"당신의 글씨는 변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이리저리 많이 꾸몄습니다. 글씨에 당신 마음속 욕심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드러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저 방에서 글씨만 그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아!"

선비는 땅을 치며 다시 산으로 향했어.

그래,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깨끗함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지. 사람은 누구에게나 개성이 있어. 그 개성을 잘 지키는 것이 정말 진실한 것이지. 진실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해주는 이야기로구나.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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