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아이 순풍순풍 나라와 함께 키우자]<2>일하는 엄마, 아이 맡길 곳 없다

구미 전체 어린이집 498곳 중 영아전담은 5곳뿐

"양띠 아기 구미 엄마들, 모여라!" 지난달 출산과 육아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인 '구미맘 수다방'을 통해 처음 만난 예비 엄마들이 경북 구미시의 한 카페에 모여 있다.

구미는 경북 출산율을 견인하는 대표 도시다. 2013년 구미 출생아 수는 4천790명으로 경북 전체 출생아 2만2천206명의 21.5%를 차지했다. 구미 출생아 수는 경북 23개 시'군 중 1위다. 대기업과 크고 작은 공장이 모여 있는 공업도시인 구미에는 젊은 엄마들이 많다. 인구 42만 명 도시에는 어떤 출산'육아 지원책이 필요한지 구미지역 엄마들을 만나 들어봤다.

◆"아이와 함께 갈 곳 필요해요!"

지난달 구미시 구평동의 한 카페. 구미시 곳곳에서 온 임산부 1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날 처음 만난 이들은 곧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들로 출산과 육아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인 '구미맘 수다방'을 통해 만났다. "어느 병원 다니세요?" "산후조리원은 어디로 정했어요?"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다.

이 모임을 기획한 사람은 김기양(33) 씨. 셋째를 임신한 김 씨는 "2015년 태어나는 아기를 위해 친구를 만들고 앞으로 함께 애를 키우자는 뜻에서 모였다"고 모임의 취지를 설명했다.

구미는 경북에서 출생아 수가 가장 많은 도시로 2012년에도 5천386명이 태어났다. 하지만 구미 엄마들은 매년 태어나는 아이 수에 비해 어린 자녀와 함께 갈 장소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키즈카페는 주말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대형마트 문화센터는 강좌 신청기간이 되면 대학교 수강신청을 연상케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박혜영(32) 씨는 "대구에는 대구수목원과 수성못, 달성공원, 어린이회관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구미에는 놀이시설인 금오랜드와 동락공원을 빼면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다"며 "동네 마트 문화센터도 '오감 발달'처럼 인기 있는 강좌는 10분 만에 다 마감돼 경쟁에 밀려 신청을 못 하면 한 학기 동안 아이와 집에서 지내야 한다"며 씁쓸해했다.

이 때문에 구미지역에는 '구미맘 수다방'을 중심으로 젊은 엄마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모임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벼룩시장이다. 지난해 늦가을에는 한 달에 12차례나 열리기도 했다. 직접 만든 아기 모자와 입욕제를 팔기도 하고, 옷과 신발, 장난감 등 쓰지 않는 물건을 사고판다.

지자체도 알찬 정책으로 지역 엄마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경북도가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출산 및 육아용품 알뜰시장'은 출산과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데 드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행기'유모차 등을 무료로 빌려주거나 교환할 장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는 2010년 예천군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가 제안한 '시민 정책'을 경북도가 받아들여 시행한 것으로 구미를 포함해 경북 21개 시군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법 어기고 야간 근무시키는 회사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굵직한 대기업이 많은 구미에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많다. 그래서 부부 모두가 2, 3교대로 근무하면 늦은 시간 아이를 맡길 만한 시설이 필요하다. 또 일자리를 찾아 구미에 왔거나 결혼해서 정착한 사람들이 많아 구미가 고향인 '토박이'를 찾기 어렵다.

이날 모인 엄마들의 고향도 제각각이다. 10명 중 구미가 고향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친정은 대구'부산'울산 등으로, 시댁은 전라도, 경남 창녕 등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아기를 키울 때 여느 집처럼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아전담 어린이집이나 야간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아이사랑 보육포털'(http://www.childcare.go.kr) 검색 결과 구미 전체 어린이집 498곳 중 영아전담은 5곳,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1곳에 불과했다.

김기양 씨는 "공장에서 2, 3교대로 근무하는 엄마들의 경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 달 출산을 앞둔 A(28) 씨는 구미의 한 대기업에서 10년간 휴대전화 부품 조립을 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야간 근무를 교대로 하는 일인데도 A씨는 임신 9개월인 지난달 초까지 일하다가 출산 휴가를 썼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임산부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을 시킬 수 없다.

A씨는 "회사가 예전에는 임산부를 야간 근무에서 제외해줬지만 조립 라인에 젊은 여자 직원이 많고, 임산부가 많아지자 거의 다 야간 근무를 한다"며 "휴대전화 부품 조립은 앉아서 해도 되지만 습관이 돼서 야간 근무할 때도 서서 일했다. 주변에 유산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법으로 보장해도 육아휴직을 1년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A씨는 "6개월만 쓰고 최대한 빨리 복직할 것"이라며 "(회사에) 갔는데 내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지난해 시행된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A씨 같은 근로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 제도는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근무 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는 제도다. 구미의 또 다른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임산부 B(30) 씨는 "법 취지는 좋다. 하지만 야간 근무도 하는 마당에 하루 2시간 단축 근로 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체념했다.

직장 여성이 전업주부보다 유산율이 높은 것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3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인재근 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의 분만'유산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직장 여성의 유산율은 23.3%로 전업주부의 유산율 17%보다 약 1.4배 높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인숙 연구위원은 "다양한 모성보호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현장에서 겉돌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들 중에는 임신 가능 연령의 여성 근로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조직이 이들을 위한 새로운 인사 운영 방침을 만들어 근로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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