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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청양의 해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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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희생과 평화, 순종을 상징하는 양(羊)의 해다. 을미년, 청양의 해가 시작되면서 지난해 크고 작은 일들로 무겁던 마음은 내려놓고 희망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부터 소위 '갑질' 사건들이 새해 벽두에도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원래 갑을 관계는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였던 '갑'(甲)과 '을'(乙)에서 비롯됐다. 애초 갑을 관계는 주종(主從)이나 우열(優劣), 높낮이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 나열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한국에선 상하관계나 주종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병원에서도 종종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얼마 전 중년의 한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 진단서를 대신 발급받으려고 병원을 찾았다. 진단서 발급은 본인이 직접 신분증을 지참하고 방문하거나 대리인인 경우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서류는 준비하지 않고 다짜고짜 진단서를 당장 발급하라며 진료실 안에서 고함을 지르고 간호사와 의사를 윽박지르다가 "이 병원에 다시 안 온다"는 폭언과 함께 사라졌다. 또 어떤 젊은 남자 환자는 어깨 통증으로 몇 군데 근육주사를 맞은 후 고혈압이 생겼다며 평생 먹을 약값을 지불하라고 막무가내로 항의하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얼마 전 어떤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혜민 스님이 한 심리학자를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최근 나와 같은 경험들을 했던 수련의들이 있어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다가 그 인터뷰 내용이 생각나 들려줬다.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모습의 나를 용납하지 못하고 억압하면, 타인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압하려 합니다. 반대로 깊은 성찰을 통해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타인을 좀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내 속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 간의 관계가, 나와 다른 사람들 간의 관계와 동일한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억압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똑같은 상황이 되면 나 역시 그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타인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함께 상생해 나갈 수 있다. 결국 이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갑인 동시에 을이기 때문이다.

양은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아주 순해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어떤 다툼도 벌이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은 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희생적이고, 상서롭고, 정직하고, 인내심이 강한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그냥 갑질도 모자라 '슈퍼 갑질'이 만연하고 있는 이때, 2015년이 '양의 해'라는 것을 명심하고 양과 닮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이상곤 대구파티마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통증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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