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원 모친상서 엎드려 큰절 문상… 대구시향 코바체프 '감성의 지휘'

창단 50주년땐 '축하 떡' 돌려, 단원들 깜짝 생일 파티 선물 등

줄리안 코바체프
줄리안 코바체프

지난해 11월 15일. 토요일이라 개인 스케줄이 있었던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는 한 단원의 모친상 소식을 접하고는 오후 늦은 시간에 김천의 시골 마을로 향했다. 그는 한국 문화에 따라 부의 봉투를 마련하고, 영문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메시지를 쓴 뒤 두 번 엎드려 절을 했다.

그의 출현에 그날 장례식장에 있던 대구시향 단원들은 물론이고 경북도향 단원들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외국인 지휘자가 장례식장에 나타난 일은 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코바체프는 단무장에게 "대구에 머무르는 동안이라도 단원들의 어려운 일에는 적극적으로 함께하겠다. 언제든지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바체프의 감성 리더십이 대구시향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서로 감성으로 마음의 문을 열면서 긴장감을 내려놓고 연주를 즐기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는 관객들에게 소리로 감지되고 있다. 코바체프 취임 후 대구시향의 소리가 한결 부드럽고 풍성해졌다는 평가다.

이는 코바체프의 믿음의 리더십 덕분이다. 음을 다듬어 나가면서도 코바체프는 시종일관 "긴장은 풀고 편안하게 연주하라" "당당히 충분한 소리를 내라" "실수를 두려워 마라" 등 단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단원들을 전적으로 믿으며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려 노력한 것이다.

이런 그의 소통 방식은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대구시향 50주년 기념음악회에는 "경사스러운 날 한국에서 축하하는 방식으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며 떡을 해 단원들과 내외 관계자들에게 나누는 성의를 보였다. 또 지역의 음악 인재 육성과 재능기부에도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유스오케스트라를 대상으로 무료 오케스트라 합주 마스터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추가 지휘료 없이 지역 시민들을 위해 정기연주회 횟수를 늘리는 데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 5월부터 코바체프가 지휘하는 정기연주회는 하루 공연이 아니라 이틀로 늘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단원들도 화답했다. 지난 12월 13일 대구시향의 제410회 정기연주회 마지막 리허설을 위해 코바체프가 무대로 나오자 단원들은 생일 축하곡을 연주했다. 이날 쉰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줄리안 코바체프를 위해 단원들이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코바체프는 놀람과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성공적인 연주회는 당연지사.

사실 불가리아 출신의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난해 4월 대구시향에 부임할 무렵만 해도 지역에서는 베일에 싸인 이국의 지휘자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국제무대에서 널리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는 국립오페라단과 KBS 교향악단의 객원지휘를 맡은 이력이 전부이다 보니 기대와 걱정이 뒤섞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력으로 단원들의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코바체프는 따뜻한 가슴으로 단원들과 소통하면서 대구시향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최근 대구에 거처까지 마련한 줄리안 코바체프는 "해외 일정이 간간이 있지만, 임기 동안에는 가급적 대구에 머물며 대구시향의 연주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대구에 대해 "세계 곳곳을 다녔지만 대구는 시민들의 따뜻한 정서와 생활의 편리함, 안전한 치안 등이 마치 고향에 있는 듯한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코바체프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 등을 지휘하며 얻은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 단체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열정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한윤조 기자 cgdrea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