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2병' 어른들의 이야기…"첫 담임이 중2, 두려웠고 상처도 받았지만…"

우주가 뒤흔들릴 만큼 혼란을 겪는다는 중2. 중학생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은 학교 교사와 부모, 학원 강사다. 이들이 생각하는 '중2병'은 무엇이며 내 학생, 내 자녀와 생각 차이를 겪을 때는 언제일까. 이번에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다. "우리도 상처를 받는다"며 아이들 앞에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지면에 풀어봤다.

◆"첫 담임이 중2, 처음엔 두려웠죠"-황미정(가명'27'중학교 영어교사 3년차)

2013년 2월이었다. 첫 부임지인 중학교에서 중2 여자반 담임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내려앉았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대한민국 중2를 교사 경력 제로인 내가 맡게 됐으니 말이다. 교육 당국도 중2 때 가장 사고가 잦다며 복수담임제를 시행했다. 중2는 또래집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시기다. 자기가 속한 무리가 곧 자신이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 홀수로 노는 여학생 무리가 있었는데, 한 명이 의자에 혼자 있다가 "알로(왕따를 뜻하는 은어. 영어 Alone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 같아요"며 갑자기 울기도 했다. 담임에게 '카톡'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는 소풍 직전이다. 애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소풍을 가기 싫다고 카톡으로 통보한 학생을 설득하는 것도 담임의 역할이었다.

화장 때문에 애들과 협상을 한 적도 있었다. 요즘은 저렴이(저가) 화장품이 많이 나와서 예전보다 더 화장하기 좋은 시대다. 한창 외모를 꾸미고 싶은 나이라는 것을 선생님도 이해한다. 대신 색조 화장, 틴트, 서클렌즈, 강한 아이라인은 안된다고 학기 초에 못을 박았다. 선생님 앞에서 화장하다가 적발된 화장품만 압수하기로 협의했고, 걸릴 때마다 벌금을 500원씩 모아 '치킨'을 사먹자고 합의했다. 요즘 애들은 합리적이어서 자기들 눈에도 화장이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친구는 서로 고발했다. 눈 밑 애교 살에 시커먼 아이라이너를 그린 학생은 친구의 고발로 교무실에 왔다.

우리 반 애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학생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친한 친구끼리 돌아가면서 같은 남학생을 사귀는 건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절친(친한 친구)의 전 남친(남자친구)이 A의 남친이 됐다가 또 B의 남친이 되고, 그런데도 우정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나도 애들한테 상처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 욕을 대놓고 할 때 가장 상처받는다. 수업 시간에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규칙이 모호하고 이상했다. 한 학생이 "아씨, 지 맘대로다"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또 학생들은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옆 반과 다른 선생님, 다른 학교와 종종 비교하며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래도 신문과 뉴스에 등장하는 무서운 중학생들에 비하면 우리 반 아이들은 천사였다. 우주에서 가장 착한 중2를 만나 교사 생활의 첫해를 평온하게 넘겼다. 애들한테 고맙다.

◆"중2병은 자아 찾는 과정"-민경숙(가명'45'예비 고1 엄마)

부모라는 자리는 참 어렵다. 큰딸이 중2였던 2년 전 엄마로서 가장 많이 고민했다. 중2는 아이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중1 때는 딸이 조금 민감하다고 생각했는데 중2가 되자 화를 자주 냈고 "혼자 있고 싶다"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며 부모와 벽을 쌓았다. 아이가 갑자기 변하니 나도 힘들었다. 스마트폰에 집착하거나 안 하던 컴퓨터 게임을 할 때는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만 일부러 골라서 한다는 생각도 했다. 자꾸 부딪히니까 웬만하면 큰딸 방문을 열지 않았다. 나도 힘들고, 딸도 힘들었다.

계기가 필요했다. 원래 남편이 출근길에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 줬지만,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내가 아이를 태워주기로 했다. 집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아이가 차 안에서는 입을 열었다. 1년간 등굣길 아이를 데려다 주며 많은 대화를 했고, 나중에는 묻지 않아도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나를 감동시켰다.

부모는 종종 "내 아이는 내가 가장 많이 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자녀 앞에서 참고, 괜찮다고 품어주기보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큰딸은 혼자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또 자기를 비판하는 말은 쉽게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엄마 그때는 왜 그렇게 말했는데?"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도 자녀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 애들은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면 표현하지만 부모는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상처받았어"하고 말할 수 없다.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아이를 키웠는데 중2가 되니 딸의 삶 속에 '엄마'가 없었다. 문제가 있는데 의논하지 않고 혼자 결정할 때 부모는 설 자리를 잃는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줘야 하고, 이해하고, 힘을 줘야 한다. 중2병은 아이들이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거니 어른들이 기다려줘야 한다. 둘째 딸이 내년에 중2가 되고, 셋째 딸도 훗날 중2가 될 것이다. 중2, 사실 조금 두렵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중2병 극복 경험이 한 번 쌓았으니 좀 더 괜찮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모든 중학생이 중2병에 걸린 건 아니에요"-주민정(가명'31'4년차 학원 사회 강사)

중2병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2병에 걸린 학생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세상이 마냥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보지 못하고 어른의 권위에 무조건 반기를 든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상이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다. 이건 내가 30년 넘게 세상을 살며 얻은 깨달음이니 아이들에게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학원은 공교육 울타리에 있는 학교와 다르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정해진 양의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학원 강사의 역할이다. 만약 한 학생이 수업 진행을 방해해 진도가 늦어지면 다른 학생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애들 두 명이 수업시간에 심하게 떠들었다. "조용히 하라"고 똑같이 꾸짖었는데 한 명은 잘못을 인정했지만 한 명은 "안 떠들었는데요. 아씨, 짱나(짜증 나)"라고 화를 냈다. 마음 같아서는 수업 후 그 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애가 "다음 학원 가야 하는데요"라고 말하면 학원 강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나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학원 강사의 길을 택한 것은 아이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행동이 거칠고, 말을 함부로 하는 중학생도 있지만 친구와 선생님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중학생이 더 많다.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욕을 하면 다른 학생은 "쌤, 쟤 원래 저래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사람들은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 말하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 때도 어른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은 항상 존재했다.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 성숙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님도 사람이다. 자기 기분에 따라 학생들을 일관성없이 대한다면 그건 문제지만, 때론 아이들과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른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면 아이들도 마음의 벽을 서서히 허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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