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립대 기성회비 대란…'등록예치금'도 근거없어 소송당할 수도

대구경북 4개대 28일 기성회계 폐지 영향은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및 전국 31개 국공립대 기성회 직원 대표자 등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성회계 대체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및 전국 31개 국공립대 기성회 직원 대표자 등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성회계 대체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대'안동대'대구교대'금오공과대 등 대구경북 국립대가 '기성회비' 대란(大亂)에 휩싸이고 있다. 대학 재정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기성회비가 50여 년 만에 폐지되지만, 기성회비 대체 재원을 마련할 법령은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성회비 재원을 근거로 하는 기성회 직원들의 고용 승계는 아직 논의조차 못해 후폭풍이 예상된다.

◆기성회계 폐지, 등록예치금 꼼수

대구경북 국립대는 이달 28일 자로 기성회계를 폐지한다. 1963년 옛 문교부 훈령으로 기성회비가 등장한 지 꼭 52년 만이다. 지역 국립대가 기성회계를 폐지하는 이유는 국립대 학생들이 낸 기성회비 반환소송 때문이다. 법원은 1, 2심에서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고, 이달 중 대법원 최종 판결이 예고돼 있다.

등록금 고지서에는 벌써 기성회비가 사라졌다.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소송이 뻔한 기성회비를 또다시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편법'이 등장했다. 지역 국립대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신입생 등록금을 거두면서 기성회비와 수업료를 합쳐 '등록예치금'을 고지했다. 지역 국립대 관계자들은 "등록금의 70~80%를 차지하는 기성회비 분을 거두지 못하면 대학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편법이든 불법이든 일단 거두고 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대학회계상 '등록예치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성회비와 마찬가지로 법적 근거가 없어 반환소송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21C한국대학생연합'전국교육대학생연합'참여연대 등은 이달 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예치금은 기형적인 납부 방식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구경북 국립대의 등록예치금 규모는 1천480억여원(경북대 1천억여원'안동대 200억여원'금오공과대 200억여원'대구교대 80여억원)이다. 전국적으로는 1조3천억여원에 이른다.

◆대체 입법은 하세월

지역 국립대가 등록예치금이라는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성회비 대체 입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는 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2012년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포함해 걷을 수 있도록 하는 '국립대학재정회계법'을 발의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기성회비를 대신할 만큼 정부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며 재정회계법 입법을 반대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이달 5일 법안소위에서 재정회계법 논의를 재개했지만,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2월 임시국회 중에는 반드시 재정회계법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새정치연합은 교육현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교육정무직법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앞서 교육부는 재정회계법이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올해 전국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1조3천여억원의 예산을 긴급 편성했다. 국'공립대 입장에서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예산 집행에서의 여러 가지 제약으로 대학 운영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지역 국립대 관계자는 "전년도 대비 30% 이상 예산이 깎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국회가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재정회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기성회 직원은 고용 불안

기성회비 대체 입법 지연에 따라 기성회 직원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달 28일 기성회계가 폐지되면 기성회 직원의 고용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성회 직원들은 기존 기성회계에서 일반회계로 재편성돼 한시직, 비정규직 신분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현재 대구경북지역 국립대 기성회 직원은 경북대 113명을 비롯해 250여 명에 이른다. 박영란 경북대 기성회노조 지부장은 "일반회계 재편성 이후 급여 등 기성회 직원들의 근로 조건이 후퇴할 경우 줄소송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교육부가 국립대 기성회 직원의 고용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대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기성회 직원의 고용 불안은 여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교육부는 기성회 직원들을 면직하고 신규 채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따른 퇴직금 정산 및 임단협 체결 과정에서 기성회 직원들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에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및 전국 31개 국공립대 기성회직원 대표자 등은 이달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공립대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체 입법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기성회 직원은 급여의 재원을 기성회회계로 하고 있을 뿐 국가가 채용했고 대학 총장과 체결한 단체협약과 근로기준법'노동관계법령에 의해 고용과 근로조건이 이미 보장돼 있다. 단순히 급여의 재원이 사라진다고 해서 임금삭감을 공식화하는 재정회계법은 대학과 기성회 직원 간 마찰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기성회 직원의 온전한 법적 지위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상준 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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