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1절 잊지 않아요, 위안부] 위안부 영화 '귀향' 만드는 조정래 감독

트럭에 실려가고 불에 타는 처녀들…그 그림 한 장이 인연 된 거죠

조정래 감독이 영화
조정래 감독이 영화 '귀향'을 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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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티저 영상 중 한 장면.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12년 전, 영화를 공부하던 한 청년은 그림 한 점을 우연히 보게 된다. 트럭에 타고 있는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들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빨간색 돌기가 칠해진 둥근 테두리 안에 똑같은 옷을 입은 소녀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테두리 바깥에는 군인 두 명이 서 있는 그림이었다. 색깔의 대비가 강렬해 이 청년에게는 잊히지 않는 그림이 됐다. 이 청년은 그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이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 청년이 바로 영화 '귀향'을 제작하고 있는 조정래(41) 감독이다.

◆영화의 시작이 된 그림 한 점

조정래 감독이 본 그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8)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이었다. 강 할머니는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4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태워지는 처녀들'은 중국으로 끌려간 강 할머니가 일본군에 의해 모진 고초를 당하고 병에 걸렸을 때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버리려던 장면을 기억하고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서 빨간색 돌기가 칠해진 둥근 테두리가 바로 병들고 죽은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불태우던 구덩이였다. 강 할머니는 이때 일본군과 광복군 사이에 벌어진 교전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조 감독은 며칠을 잠 못 이루다 이를 시나리오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귀향'이다. 영화 '귀향'은 이때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른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극 영화로 만들어진다.

"극 영화로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면 할머니들이 끌려가신 거냐'라고 물어보더랍니다. 매번 '위안부 할머니'라고 표현하다 보니 이분들이 처음 끌려갈 때 평균 나이는 16세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린 나이에 그런 모진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공감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큐보다는 극 영화가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제목 '귀향'(鬼鄕)에서 '귀'는 '돌아올 귀(歸)'가 아닌 '귀신 귀'(鬼)를 썼다. 조 감독은 "타지에서 고통받고 스러져간 많은 위안부 소녀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자는 의미를 담아 영화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다.

◆"정말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정래 감독은 2003년 처음 시나리오를 쓴 뒤 지금까지 시나리오를 계속 고쳐나가면서 동시에 영화 제작에 투자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가 사람들에게 호응이 있겠느냐"며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특히 어떤 사람은 "투자를 하겠다"며 조 감독을 불러내서는 "위안부 할머니들 다 가짜고 거짓말 아니냐"라며 훈계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후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포털사이트인 '다음'의 뉴스펀딩을 통해 영화의 제작 의도와 과정을 알리면서 2만5천 명이 댓글을 통한 모금에 참여해 약 1억원이 모였으며, 이전부터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모금을 진행해 현재는 4억3천만원의 제작 후원금이 모였다. 하지만 영화 제작에 필요한 예산 약 25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문제는 대기업을 포함한 큰 단위의 후원이나 제작비 지원을 바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작에 필요한 실질적 후원도 점차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25억원으로는 영화 후반 편집 및 보정 작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하는데 KBS의 사운드 엔지니어분들이 영화 후반 음향 작업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하셨고, 대진대학교에서도 실내 세트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빌려주시기로 했습니다. 티저 영상을 찍은 경남 거창군에서도 촬영 장소 지원부터 군민들의 모금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광복절 시사회를 목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화 제작 과정 중 그나마 많은 도움을 받은 쪽은 배우 확보 부분이다. 연극배우 손숙 씨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는 곧바로 '참여하겠다'고 결정했고, 손 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배우들을 섭외했다. 이 영화의 주연인 강하나(16) 양도 재일동포다.

"이 영화가 좀 더 실재에 가깝게 표현되려면 배우들의 일본어 사용도 유창해야 합니다. 일본인 배우를 섭외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고 결국 재일동포들이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배우들은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우익 매체에서 영화에 관련된 기사를 실으면 그 아래 달리는 댓글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답니다. 이런 부분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조정래 감독은 대구경북지역에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돼 주신 강일출 할머니를 포함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 중 경상도 출신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할머니들의 고통을 같이 나눠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작 후원을 위해 전국에서 후원 콘서트가 열리고 있고 대구에서도 열렸습니다. 그때 많은 후원을 해 주셔서 대구경북지역민들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영화 '귀향'은 지난해 10월 티저 영상을 촬영했고, 현재는 촬영 장소 섭외와 제작 투자 마련 등 이른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있다. 공식적인 크랭크 인은 오는 4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다. 조정래 감독의 목표는 '귀향'이 올해 광복절에 완성된 영화로 시사회를 여는 것이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영화 '귀향' 후원 방법=영화 '귀향'에 후원하는 방법은 현재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 제작사인 제이오엔터테인먼트의 계좌(우리은행 1005-002-173230 예금주: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조정래)로 직접 송금하는 방식으로, 1만원 이상 후원할 경우 영화 엔딩크레딧에 후원자의 이름이 기재된다. 두 번째는 ARS 번호 #1365-2015로 영화 '귀향'에 대한 응원메시지를 보내면 다음 달 전화요금에서 3천원이 영화 제작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자세한 내용은 제이오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www.joent.net)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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