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출혈로 투병 중인 김석호 씨

퇴근길 갑자기 쓰러져…몸은 굳고 말문마저 막혀

뇌출혈로 쓰러진 김석호 씨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뇌출혈로 쓰러진 김석호 씨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오로지 두 딸과 아내만을 위해 살아온 김석호(48) 씨. 아파도 내색 한 번 하지 못한 채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던 그는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토록 예뻐했던 두 딸에게 말을 건네고 싶지만 온 힘을 다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손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쓰러진 뒤 보름 만에 20년을 함께 살았던 두 딸의 엄마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석호 씨의 딸들이 아빠 곁을 지켜야 한다.

◆성실함을 무기로 살아온 가장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석호 씨.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이 다소 떨어졌지만 착하고 건강했던 그다. 석호 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홀로 자식들을 돌봐야 했다. 석호 씨의 형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말문을 닫아버렸던 동생을 기억한다. "성격이 여렸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이 컸는지 아예 말을 잃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모자란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어요."

아버지는 홀로 농사를 지으면서 6남매를 키워냈다.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석호 씨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만두 빚는 기술을 배워 식품 공장에 취업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20살이 될 때까지 오로지 일터와 집밖에 몰랐다. 일했던 식품 공장이 문을 닫지 않으면 한 곳에서 몇 년씩 일할 정도로 우직한 성격이었다.

일만 하며 지내던 20살의 그는 아내를 만났고, 자신의 가족을 꾸리게 됐다. 식품공장에서 만두 빚는 일로는 월급이 많지 않았고, 결혼식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두 사람은 함께 살았다. 곧이어 큰딸이 태어났고, 3년 뒤 둘째 딸까지 얻었지만 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석호 씨를 딱하게 여긴 형은 10년 전쯤 두 사람의 결혼식을 올려줬다. "조카들도 있는데 결혼식도 안 한 채로 사는 동생과 제수씨가 안타까웠어요. 그때만 해도 저라도 도와줄 만한 형편이 돼서 결혼식을 치러줬는데…."

빠듯한 생활이었지만 아내와 두 딸이 있어 석호 씨는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방 두 칸짜리 월세방이지만 가족이 함께 지낼 곳이 있었고, 적은 돈이지만 꼬박꼬박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일자리도 있었다. 두 딸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공장에서 퇴근하려던 그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가족의 소소한 행복은 깨져버렸다.

◆떠나버린 아내와 아빠를 돌봐야 하는 두 딸

석호 씨가 쓰러졌던 원인은 뇌출혈. 곧바로 병원에 옮겨져 수술까지 받았지만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쓰러진 뒤 보름쯤 지났을 때 석호 씨에게는 아픈 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다. 20년간 함께 지내온 아내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집에 '외할머니댁에 잠깐 다녀오겠다'는 쪽지를 남긴 뒤 소식이 끊겼다. 두 딸은 엄마가 떠나버렸다는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아픈 아빠를 돌봐야 했다.

사라진 것은 엄마뿐이 아니었다. 네 식구의 전 재산이었던 200여만 원이 든 통장도 엄마와 함께 사라졌다. 두 딸은 슬픔보다 원망이 커졌다. 또래 친구들은 대학교 입시,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느라 엄마가 살뜰히 챙겨주는데 석호 씨의 두 딸은 엄마의 보살핌은커녕 아픈 아빠를 돌보느라 학교 수업도 빠지는 상황.

석호 씨의 형은 쓰러진 동생과 불쌍한 조카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당장 수입이 없어진 동생 가족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하고, 직장에서 쓰러진 동생이 산업재해에 해당하는지 알아보는 등 자신의 일처럼 나섰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은 됐지만 산업재해는 인정되지 않았다.

동생 가족을 위해 뛰어다니던 형도 얼마 전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 형은 특별한 원인 없이 뇌혈관이 좁아지는 '모야모야병' 환자다. "제 형편도 그렇게 좋지 못한 상황이지만 생업까지 내버려두고 동생을 도우려 다녔죠. 형이 능력이 있어서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만방으로 뛰어다니기라도 했던 건데…. 제가 아프면 동생과 조카들은 누가 챙겨줄지 걱정이에요."

석호 씨 가족에게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돈'이다. 밀린 병원비만 해도 100만원이 훌쩍 넘고, 두 딸이 학교에 가는 낮에는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하루 5만원이나 하는 간병비는 가족에게 큰 부담이다. 두 딸이 사는 사글셋방도 6월이면 계약이 끝나 살 집 마련하는 것도 걱정이다.

석호 씨의 형은 한창 미래를 설계할 나이의 조카들이 간병만 하고 있는 모습에 눈물짓는다. "큰 조카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꿈도 못 꾸고 있고, 작은 조카는 몸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럴 형편도 안돼요. 큰아버지가 돼서 잘 돌봐주고 싶은데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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