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사라지는 극장들을 안타까워하며

어릴 때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셨다. 그때 칠성시장도 단골 코스 중 하나였는데, 칠성시장에 대한 다른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유일하게 나는 기억이 있다면 바로 신도극장이었다. 신도극장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기 전 전국의 영화관이 개봉관과 재개봉관, (비공식적 분류로) 삼개봉관으로 분류되던 시절, 매일신문 극장별 상영 영화를 공지하는 난에 재개봉관으로 분류되던 곳이었다. 당시 신도극장에 걸리던 영화들은 재개봉관의 소임에 맞게 당시 '개봉관' 타이틀을 갖고 있던 만경관이나 아카데미극장에서 막을 내린 영화들도 있었지만 심형래 감독의 역작(?)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가 대구에서는 그곳에서밖에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칠성시장 여기저기를 구경하시다가 애들도 볼 수 있는 영화를 칠성시장 근처 신도극장에서 상영한다 하니 당신의 지친 다리도 쉴 겸 해서 날 자주 데리고 가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도극장은 나이트클럽이 입주한 상가로 바뀌었다. 그냥 그대로 영업을 계속했다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아, 저기가 옛날엔 '영구와 땡칠이'라는 영화를 틀어주던 극장이었어"라고 이야기할 거리라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몇 주 전 옛 신도극장 근처를 지나던 도중 가림막이 설치됐기에 자세히 살펴봤더니 이미 중장비들이 건물을 부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왠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기억할 만한 장소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아 우울함을 느꼈다.

무너지는 신도극장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던 영화관들이 이미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에서 '영구와 땡칠이'류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티켓을 뿌렸지만 정작 상영은 조조 시간에 한 번 틀까 말까 했고 막상 가면 성인 에로물이 걸려 있었던 '황제극장'은 모텔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또다시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타이타닉' '여고괴담' '봄날은 간다' 등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대구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중앙시네마'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문을 닫은 채 흉물로 남았고, 대구극장, 아세아극장, 명보극장은 주차장으로 변해 지금 그곳이 극장이었는지 모르는 20대들이 훨씬 많을 정도다. 관객석의 경사가 아찔했던 자유극장은 구제 옷을 파는 곳으로 변한 지 오래다. 그나마 송죽극장, 제일극장은 연극 전용 극장으로, 한일극장, 아카데미극장, 만경관은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탈바꿈했지만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러고 보니 대구에 있던 그 많던 극장들은 이미 멀티플렉스 체인에 흡수되거나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다. 그나마 만경관만이 현재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옛날 극장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유년 시절을 기억할 만한 공간이 점점 사라진다는 느낌에 살짝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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