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공무원이 직접 TV에 나와서 칠판에 기상도를 그려가며 일기예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기상청 김동완 통보관이었다. 깔끔한 발음의 내레이션에 깔끔한 외모는 '날씨=김동완'이라는 등식을 20년 이상 유지시켰다. 이후에 조석준(KBS), 지윤태(MBC), 이찬휘(SBS) 같은 기상 전문가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모두 기상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들이었다. '기상 박사'들답게 해박한 지식으로 뉴스 끝머리서 시청률 경쟁을 이끌었다.
이때만 해도 '기상 캐스터=남자'라는 등식에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이 '금녀의 영역'에 이상 조짐이 오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 기상 캐스터 이익선 씨가 등장하면서다. 때마침 대중화된 컬러TV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상큼한 매력을 자랑했던 이 캐스터는 금세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날씨 자체 시청률은 물론 뉴스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방송사들은 앞다퉈 여성캐스터들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공중파는 물론 종편, 케이블까지 여성 기상 캐스터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펜클럽까지 거느리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금녀의 구역에서 여성의 성역(聖域)으로 변모한 한국의 기상 캐스터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세대' 김동완 통보관=한국에서 최다 방송 출연자는? 전국 노래자랑 MC 송해? 아니다. 놀랍게도 김동완 전 기상 캐스터다. 그는 새벽 뉴스부터 9시뉴스, 마감뉴스까지 하루 3, 4차례씩 출연을 했다. 태풍이나 장마 시즌엔 아예 카메라 앞에 앉아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해야 했다. 이런 생활을 33년 지속했다고 하니 대충 셈 잡아도 3만 회를 넘어선다. 국민 기상 캐스터라는 말이 실감 난다.
40대 이상이라면 차분한 톤으로 해설을 이어가던 그의 풍모를 쉽게 떠올릴 것이다. 익숙한 놀림으로 칠판에 매직펜으로 직접 기상도를 그려가며 하던 해설은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렸다.
시청률을 줄곧 리드한 덕에 두 번이나 스카우트(TBC, MBC)되며 몸값을 키웠고 톱 클래스 대접을 받으며 억대 광고도 서너 편 찍었다.
365일을 날씨에 묻혀 살던 그에게 지윤태라는 후배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휴일, 휴가라는 것을 챙길 수 있었다고 한다.
기상 캐스터 2세대도 역시 남성이 대세였다. 이 중 선두 주자는 조석준 전 KBS 기상 캐스터. 조 캐스터는 우리나라 기상전문기자 1호로 샤프한 외모와 말솜씨로 김동완 캐스터와 경쟁구도를 이루었다. 바로 뒤이어 SBS의 이찬휘(현 TV조선), MBC 지윤태가 안방에 꾸준히 날씨를 전했다.
이들 3인의 공통점은 모두 공군에서 기상 업무를 담당하던 장교 출신이라는 점. 이들은 제73기상전대에서 근무하며 쌓은 기상 지식과 경험을 TV를 통해 펼쳐 보였다.
전문성을 갖춘 기상 캐스터들의 예리한 분석은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이들 트로이카의 활약 덕에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초까지는 금녀의 장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시청자들이 워낙 남성 캐스터에 익숙해 있었고 방송사에서도 스타급 진행자를 육성해왔던 터라 20년 넘게 이 구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적어도 '날씨의 여신' 이익선 캐스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금녀의 구역에서 금남의 영역으로=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듯한 'The Happy Song'의 경쾌한 선율에 맞춰 청아하게 울려 퍼지던 한 캐스터의 청아한 목소리는 한국 기상 캐스터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바로 KBS 기상 캐스터 이익선의 출현이다.
1991년 5월부터 KBS1 '뉴스광장'에서 날씨를 전했던 이 캐스터는 재치 있는 해설과 깔끔한 외모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익선 씨의 등장으로 시청률 판도가 달라지자 방송 3사는 경쟁적으로 여성 캐스터를 방송에 세우기 시작했다.
MBC에서 정은임, SBS에서는 박순심 앵커가 당시 이 캐스터와 3파전을 벌였다. 당시 유난히 추웠던 겨울에 미녀 3총사는 스튜디오에서 뜨거운 '날씨 전쟁'을 벌였다.
여성 앵커들의 등장 이후 장비도 화려해졌고 날씨에 따른 의상 콘셉트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노란 우의나 화사한 봄나들이 복장을 하고 방송에 나선 때도 이때부터다.
이후 MBC 안혜경'박은지, KBS 김혜선, SBS 홍서연 캐스터들이 계보를 이어갔다. 이들은 모두 방송의 꽃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의 톡톡 튀는 미모 때문에 정작 날씨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불만(?)도 줄을 이었다.
치솟는 인기 때문에 기상 캐스터들은 당시 여성들의 선망작업 1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들의 인기는 팬클럽, 팬 카페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은 수천 명씩 회원들을 거느리며 팬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다. 웬만한 중견 탤런트들 부럽지 않은 인기다.
이들은 우월한 외모, 몸매 덕에 가끔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가끔 화보나 셀카, 시스루 패션들이 공개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포털 검색어에 오르며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대중은 이런 깜짝 마케팅에 즐거워하고 본인들도 은근히 이런 반응을 즐기는 눈치다. 바야흐로 지금은 여성 기상 캐스터들의 전성기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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