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어느 톱 디자이너에게 보내는 주옥 같은 헌사

'목요일의 생각' 코너가 어느 순간부터 주간매일을 제작하는 기자들의 '치부 공개를 통한 고해성사의 장'이 된 데에는 본 기자가 괜히 축구 싫어한다고 밝히고 북한산을 오르다가 실패했다고 이야기했던 탓이 크다. 이번 '목요일의 생각'도 본 기자의 또 다른 부끄러운 경험담을 통해 세계적 디자이너에게 주옥 같은 헌사를 보내려 한다.

한 달 전 날씨가 따뜻해질 때 입을 만한 괜찮은 바지를 찾으러 하이에나처럼 동성로를 누비고 다녔을 때 일이다. 한 글로벌 SPA매장에 갔더니 남색의 정장 바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는 흰색 줄로 된 넓은 체크무늬가 새겨진 그 바지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사이즈도 있었다. 입사 이후 점점 허리선이 없어지면서 맞는 사이즈를 갖춰놓은 옷가게가 점점 사라지는 마당에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냉큼 옷을 들고 탈의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탈의실에서 아주 통렬한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다. 허리, 허벅지는 어찌어찌 맞는데, 종아리가 터져나갈 듯 꽉 끼는 것이었다. 도저히 입고 다닐만한 성질의 옷이 아니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옷을 반납했다. 바지 속에 적혀 있던 'Skinny Fit'(스키니 핏)이라는 글자를 미처 보지 못한 탓을 하려던 찰나, 이 브랜드의 모델이 허벅지와 종아리 굵기라면 나름 세계적이라 자부할 만한 잉글랜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었다는 사실에 이성의 끈이 끊어질 뻔했다.

본 기자에게 굴욕을 안겨 준 이 스키니 바지는 2006년부터 만들어졌다. 예전에 '빽바지'라고 해서 록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딱 붙다 못해 꽉 끼는 바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성 의류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06년쯤 디올 옴므(Dior Homme)의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라는 양반이 '드레인파이프 팬츠'(바지통 사이즈가 빗물받이 홈통만 한 바지)라 불리는 스키니 핏 바지를 남성용 바지로 내놓으면서였다. 이 때문인지 대부분의 옷 가게에서 가장 먼저 팔리는 남자 바지 사이즈가 32~34인치인 대한민국에서 스키니진을 입지 못하는 남자들이 태반임에도 우리나라에서 디자인되는 바지는 점점 종아리의 혈액순환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통이 좁아지고 있다. 한 남자 모델은 지금도 허리 30인치의 호리호리한 체형인데도 "더 빼야 돼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스키니 핏 바지를 입은 남자를 좋아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본 기자는 이번 '목요일의 생각'을 '스키니 핏의 선봉장' 격이 돼 버린 브랜드 디올 옴므와 당시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 그리고 스키니 핏이 유행한다고 대한민국에 유통되는 모든 바지의 통을 일률적으로 줄여 대한민국 남성들이 바지에 대한 선택권을 일거에 정리해버린 대한민국 의류 업계의 일사불란함에 박수를 보내며 한마디 충언을 하고자 한다. "좀 작작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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