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흥행 기세가 무섭다. 스크린 점유율 36%, 상영 횟수 점유율 57%, 예매율 65%. 개봉 이후 각종 흥행 신기록을 깨고 있는 중이며, 개봉 2주 만에 천만 관객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상영 횟수 점유율을 보니 반 이상을 '어벤져스2'가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계획 없이 극장에 갈 경우, '어벤져스2'를 보게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대기업 극장체인이 블록버스터 영화로 스크린을 도배하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어제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다. 관객의 취향을 점점 획일적으로 만들고 있는 환경에서 개성 있는 작은 영화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직접 대결하기에는 무모해 보일지언정,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선택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다양성영화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틸 앨리스'의 선전이 눈에 띈다.
가정의 달 5월에 가족영화이자 한 여성의 분투기인 '스틸 앨리스'는 분명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영화는 치매로 고통받는 한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가족의 슬픔을 다루며, 병마와 죽음에 대처하는 고결한 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웰빙(well-being) 이상으로 웰다잉(well-dying)은 현대인에게 있어 중요한 이슈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실천하는 데 있어 '잘 견디고 죽음을 잘 맞이하는 법' 역시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정보력 상승으로 인해 수명은 늘어났지만, 각종 병마의 위협 역시 커지고 있다.
병과 죽음은 가족 구성원 혹은 나 자신에게도 곧 들이닥친다. 영화에서처럼 불시에 찾아온 비극적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영화에서 치매를 겪는 주인공을 마주하며,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50살의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명문 컬럼비아대학 언어학과 교수다. 아름답고 지적이며,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운, 누가 봐도 부러울 것 없는 삶이지만 앨리스는 최근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뒤 자신이 가족력에 의한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병을 인정하고 가족과 슬픔을 나누며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최대한 기억하려 하지만, 어느새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영화는 앨리스가 겪는 상실의 과정을 그린다.
치매로 인해 스스로를 망각하게 되는 주인공을 맡아 상실의 아픔을 완벽하게 연기한 줄리언 무어는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네 번의 오스카 노미네이트 후에 얻은 쾌거일 뿐 아니라, 지난해 거의 모든 주요 영화상에서 주연상을 휩쓸 정도의 열연이었다.
영화의 원작을 쓴 리사 제노바는 신경의학자로서 자신이 관찰한 환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오랜 영화 동료인 리처드 글랫저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가 공동 연출했다. 두 사람은 동성결혼한 부부이며, 글랫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다. 글랫저는 자신 스스로 병마와 싸우며, 몸이 점점 굳어져가는 와중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영화를 완성했고, 올해 3월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슬픔을 과장하거나, 병과 싸우는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엄마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깊이 받아들이던 자식과 남편은 이내 담담해지고,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느끼기도 한다. 완전히 정신을 놓기 전에 우아한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환자의 노력, 즉 안락사 문제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등 화려한 스타들이 펼치는 안정적인 연기가 극의 사실성을 드높인다.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할리우드 가십걸에서 개성 있는 진정한 배우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자칫 무기력한 슬픔에 빠질 수도 있는 이야기에 배우 지망생 연기로 반항과 인격적 성숙함 사이를 왕래하며 활기를 선사한다. 그녀를 보는 게 즐거울 정도로 영화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공은 무엇보다도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을 보인 줄리언 무어에게 있다. 그녀의 연설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자신이 상실의 기술을 익히고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연설한 기억이 소중하지만 아마 곧 잊힐 것이라고 한다. "고통스러운 건 아닙니다. 다만 기를 쓰며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죠."
영화는 특별하진 않지만, 알츠하이머병의 실체를 알리고 있고, 자신이나 지인에게 그 병이 찾아올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끌어낼 것이다. 우리의 삶에 더 가까이 있는 이 작은 영화의 선전을 기대한다.
영화평론가·용인대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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