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

"부패는 조금의 온정에도 독버섯처럼 번식…절대 타협 안돼"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작은 키에 강한 추진력과 자신감, 그러면서도 위트에 여유가 있다.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 이야기다.

이른바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수서 비리와 율곡사업 비리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쳤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사하기도 했다.

2004년 부패에 관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탐독한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으로 대구지검 검사장을 끝으로 25년의 검사 생활을 끝내고 부패 전담 기구인 청렴위원회 사무처장(차관급)이 되었다. 이후 법무부장관이 되었고,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국정원장을 지냈다.

때로 소신이 너무 강해 어려운 일을 겪기도 했다. 검찰 중견 간부 시절 윗사람 뜻에 반해 기초단체장 한 사람을 구속시켜 한동안 한직을 돌았다. 법무부장관 시절에도 당시 금기시되던 보수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막는 선거법 규정을 두고 청와대와 입장을 달리하는 등의 소신 행동을 했다. 결국 청와대와 갈등이 생기자 사표를 냈다.

이후 재단법인 행복세상을 만들어 공익활동을 시작했다. 국정원장을 그만둔 다음 다시 돌아와 법질서 지키기 운동과 함께 다문화가정과 협동조합 지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부패 문제에 있어 최고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그를 이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바로 그 부패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속임수 문화'와 '엘리트 카르텔'

김병준: 성완종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김성호: 전형적인 금권 유착 사건이다. 이런 것은 원래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이익을 보는 일이라 잘 터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건 한쪽이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터졌다.

김병준: 터지지만 않았을 뿐 이렇게 주고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말 아니냐?

김성호: 정치라는 게 돈이 든다. 그래서 선거공영제를 통해 상당 부분 커버해 주고 있다. 정치인들이 그 안에서 노력하고, 또 필요하면 선거공영제를 조금 더 확대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걸 안 하고 음성적으로 돈을 주고받고 있다. 스스로 만든 법과 제도를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고 있다.

김병준: 정치뿐만 아니다. 세월호 참사와 국방 비리 등에서 보듯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김성호: 누구 한 사람이라도 똑바로 해 주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 한 사람이 없었던 거다. 연고에 연줄문화,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유착, 편법, 반칙 등이 일종의 문화가 되어 있다. 흔히 속임수 문화라 하는 거다.

김병준: 미국 콜게이트대학의 마이클 존스턴(Michael Johnston) 교수는 우리의 이러한 부패문화 내지는 구도를 엘리트 카르텔형이라 했다.

김성호: 물론 그걸로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시장 로비적 성격을 띤 부패 등 다른 양상도 있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 연고와 연줄에 기반을 둔 유착이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다.

▷제도 바꾸고 시스템 바꾸고

김병준: 이런 카르텔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김성호: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욕심이 많고 불완전하다. 정직성과 도덕성에만 기댈 수는 없다. 당연히 제도와 시스템을 잘 정비해야 한다. 가령 인사 부패를 없애려면 인사를 투명하게 하는 인사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국정 전반에 걸쳐 반부패 국가 운영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김병준: 대규모 개혁 작업이 될 수 있겠다.

김성호: 투명성을 높이는 일, 규제를 합리화하는 일, 로비제도를 정비하는 일, 사면을 엄격하게 하는 일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김병준: 권력이나 권한에 대한 상호견제도 강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성호: 물론이다. 클릿가드(Klitgaard)라는 부패학자는 부패는 독점적 권한이 클수록, 재량권이 넓을수록, 또 책임이 경미할수록 많아진다고 했다.

김병준: 그런 점에서 검찰부터 너무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검찰 안에서부터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김성호: 그런 점이 있다. 부패와 관련하여서도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가지고 있다. 기소편의주의에 의해 자기가 기소를 하면 범죄가 되고 안 하면 처벌이 되지 않는다. 권한이 남용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다.

김병준: 어떻게 해야 하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하나?

김성호: 부패 문제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의 설치이다. 미국의 FBI를 생각해도 좋고,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CPIB)이나 홍콩의 염정공서(ICAC)를 생각해도 좋다.

김병준: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경찰 기능을 강화해도 되는 것 아닌가?

김성호: 경찰이 부패 수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경찰은 치안 유지 기능을 주로 하는 것이 맞다. 부패 수사는 보다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기구가 해야 한다.

김병준: 우리도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기구 설치를 이야기해 왔다. 왜 안 되고 있나?

김성호: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우선 검찰부터 달가워하지 않는다. 권한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정치인들도 그렇다. 자신들도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반대를 한다.

김병준: 앞서 클릿가드의 말을 빌려 재량권 문제도 이야기하셨는데 이 부분도 정말 문제다. 일례로 배임죄와 같은 것은 너무 넓게 규정되어 있고 기준도 모호하다. 검찰이나 규제 관련 기구 공무원들이 힘을 쓸 수밖에 없고, 부패 또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되어 있다.

김성호: 검찰만 해도 그렇다. 수사는 외과 의사가 환부 도려내듯 해야 한다. 즉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의혹이 불거진 부분이 잘 밝혀지지 않으면 탈세나 배임 등 재산 범죄를 들추어 괴롭힌다. 여기서는 쉽게 뭘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준: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걸면 걸리니 평소에 유착 구도라도 만들어두자는 쪽으로 움직인다. 스폰서 검사 등도 바로 그런 문제 아니겠나. 배임의 문제만이 아니다. 각종 인허가권 등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많다.

김성호: 뭐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리한 수사로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부패도 막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행태 고칠 '김영란법'?

김병준: 제도 문제를 넘어 행태 문제를 좀 이야기하자.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이를 더치페이법이라 했다. 즉 직무 관련이고 아니고를 떠나 돈 받지 않고, 얻어먹지 않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 했다.

김성호: 사실 이 일은 나도 관련이 있다. 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시절 법이 아닌 행동강령으로 실시한 적이 있다. 법이 아니어서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법으로 만든 것 같다.

김병준: 그때 각 부처나 기관들이 잘 지켰나?

김성호: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그때 그 행동강령을 제일 안 지키는 기관이 국회였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강한 법을 만들었다.

김병준: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쏙 빠져나갔다. 이를테면 제3자를 통해 공직자에게 청탁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막상 국회의원들은 그 '제3자'의 범주에서 빠졌다. 즉 자신들은 그런 청탁을 해도 된다는 거다. 이래서 국회가 신뢰를 잃는 거다.

김성호: 바로 그 제3자 청탁 금지와 관련해서 걱정이 있다. 우리 국민 중 자신이 직접 관공서에 가서 자기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서 아는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을 찾아 부탁을 한다.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나?

김병준: 계속 누군가를 찾아가 부탁하지 않겠나. 잘못하면 온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김성호: 차라리 로비스트제도를 만드는 것이 맞다. 자격 있는 사람이 그러한 청탁을 합법적으로 해 주게 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얼마 받도록 하고, 만난 사람 기록하고, 세금 내고, 그러면 되지 않겠나.

김병준: 국민 정서가 용납할까?

김성호: 그렇기는 하다. 아직 우리 문화는 중간에 심부름해 주고 돈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경제 사회 아니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나?

김병준: 자, 제도와 행태 모두를 고쳐야 하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김성호: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핵심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런 전략이 없다. 말썽이 나면 말썽난 그 부분에만 매달려 옥신각신한다. '관피아' 문제만 해도 그렇다. 행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니 유착도 생긴다. 그런데 그 원인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관피아 운운하며 공무원 전체를 비난하고 있다.

김병준: 그런 종합적이고 핵심적인 전략은 누가 세워야 하나? 국민권익위원회가 하면 되나?

김성호: 그런 일을 하기에는 위상이 약하다. 과거의 청렴위원회만 해도 독립위원회였다. 그런데 지금의 권익위원회는 총리실 소속으로 독립위원회도 아니다. 힘이 빠져 있고 존재감도 약하다. 반부패 전략은 결국 국정 최고 책임자의 몫이다.

김병준: 그런 전략을 세운다 치고, 그 안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무겁게 강조되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성호: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 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불법과 부패에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손을 데어야 한다. 이게 안 되니 부패가 계속된다. 부패는 조금만 온정을 베풀어도 독버섯처럼 번진다.

김병준: 지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김성호: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를 봐라. 최측근이었던 태 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부패 혐의를 받게 되자 면담을 청했다. 그러나 만나주지 않은 채 법대로 처벌하라 했다. 이에 충격받은 태 치앙완은 자살했다. 리콴유가 빈소를 찾자 그의 부인이 부검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원칙에 어긋난다며 그마저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런 지도력이 기초가 되어 부패가 없어지는 것이다.

김병준: 개인적으로는 괴로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김성호: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수성을 의심받는다. 부패 척결을 정치적 보복이나 상대를 때려잡고 여론을 돌리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부터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김병준: 이와 관련해 최근 사면권 남용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김성호: 사면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특히 자기 주변 사람에 대한 소위 자기 사면은 안 된다.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은 더욱 그렇다. 정치인의 범죄행위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 한번 적발되면 영원히 정치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김병준: 국제투명성위원회가 발표하는 첨렴지수가 최근 43위로 낮아졌다. 이 지수는 믿을 만한가?

김성호: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춰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김병준: 중국을 예로 들면 최근 부패 척결을 저렇게 외치는데도 순위가 오히려 20위나 떨어져 100위가 되었다. 그래도 믿어야 하나?

김성호: 중국의 경우 부패 척결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부분이 있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 측근 중에서는 부패를 저지른 사람이 없겠나? 왜 그런 사람은 그냥 두느냐 따위의 의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위가 내려가기도 했을 것이다.

김병준: 우리 경우도 그런 건가?

김성호: 그런 점이 없지 않다. 또 청렴위원회도 없애 버리고 대검 중수부도 없애 버렸다. 중수부의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들면 되지 없앨 필요가 있었나? 상설특검을 만들었는데, 보기에 따라 이게 더 정치적일 수 있다.

김병준: 뭐든 정쟁으로 끌고 가서 정치적으로 재단해 버리는 우리의 정치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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