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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아끼다 똥 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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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 순
이 재 순

송화(松花)의 계절이다. 소나무 새순에 쌀알같이 조박조박 붙어 열매처럼 익고 있다. 화려하거나 색깔이 곱지 않아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꽃이기도 하다. 손으로 훑어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하면 향긋한 솔내음과 달짜근한 맛 때문에 먹을거리가 흔치않던 시절, 송화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5월 산들바람에 노란 송홧가루가 안개처럼 흩날리며 터져 나올 때쯤 어머니는 큰 그릇에다 송홧가루를 살살 털어 모았다. 잘 손질한 송홧가루를 명절이 되면 꿀과 버무려 고운 다식으로 찍어내어 차례상에 올렸다. 지금은 먹어 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지만 이처럼 조상들은 돈 들이지 않고도 정갈스러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이른 봄이라 햇나물이 조금씩 시장에 나올 즈음 지인이 시골에서 직접 캐 왔다며 쑥 한 봉지를 주었다. 헤어진 지 오래된 사람이라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날 쑥국 솜씨를 보여 주려고 신문지에 돌돌 말아 냉장고 야채 박스에 넣어두었다. 몇 번을 꺼내 보고는 가장 좋은 날을 잡으려고 오늘내일 날짜를 맞추고 있었다. 그 사이 집안에 아버님 기제사가 있었으니 평소와는 다른 음식들이 냉장고에 들어찼다. 냉장고가 비어가던 어느 날 화들짝 놀라 신문지에 싼 쑥을 꺼내보게 되었다.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보드랍던 해쑥이 시들다 못해 끝이 거무스레 변해가고 있었다. 너무나 아까워 웬만하면 먹어보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끼다 똥 된다'는 속담대로 된 것이다.

아까워서 바라만 보다가 똥 된 것이 어디 쑥뿐이랴! 주부란 상에 올렸던 것도 귀한 음식이면 다음에 한 번 더 올리려고 아끼다가 영영 못 먹고 버리는 수가 있다. 그뿐인가? 좋은 화장품이라고 조금씩 바르다 유통기한을 훌쩍 넘겨 버린 것, 또 나중에 쓸 생각으로 보관만 해두고 뚜껑도 열어보지 않고 버린 화장품 등.

나에겐 새로 산 물건은 쓰지 않고 고이 모셔두는 버릇이 있다. 비싼 물건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어쩐지 사용하면 망가질 것 같아서다. 옷장에 입어보지 못한 옷 한 벌이 있다. 꼭 입고 싶었던 옷인지라 사기는 했으나 옷장에 모셔 둔 지 몇 년, 몇 번을 꺼내보다가도 입지 못했다. 새것이라 아끼고 싶은 마음에 정작 입어야 할 시기를 놓친 것이다. 지금 꺼내 입어보니 입을 수가 없을 만큼 보기 싫고 옷의 형태도 바뀌어 버렸다. 이를 본 남편이 한마디 한다. "아끼다 똥 되었네."

어느 분이 복숭아 한 상자 사들이면 어떤 것부터 먹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작고 부실한 것부터, 흠이 있는 것부터 먹겠다고 답했다. 이것이 우리네 기본 정서이다. 그때 그분은 가장 굵고 좋은 것부터 먹겠다고 했다. 이는 처음부터 흠이 있고 부실한 것부터 먹게 되면 한 상자를 다 먹을 때까지 항상 부실한 것만 먹는 느낌이고, 좋은 것부터 먹으면 매순간 최고 것을 먹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현재의 상황에서 언제나 최고의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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