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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의 시와함께]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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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 록(1948~1977)

우리들은,

늘 그랬다.

현관(玄關)의 명사 뒤에 앉아, 통통거리며

떨어지는 햇빛을 바라보고,

우물가 모래톱에서

반짝이며, 모래가 되는 것을 보았다.

햇빛이, 모래가 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들은,

늘 그랬다.

정원의 관형사 장미꽃은

장미꽃이다가, 때로는

장미꽃이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불규칙동사로

우리들 눈 속으로 뛰어들어와

맑게 씻긴 뿌리가 되었다.

장미꽃은, 때로는

장미꽃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들은,

늘 그랬다.

소금을 넣은 한 잔의

食水, 담배를 피워 물고

털이 많이 난 친구, 부사(副詞)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화를 걸고, 또 걸고,

반비음(半鼻音)의 책을 읽으면서

말없이 기다렸다.(……)

(부분. 유고시집 『이 식물원을 위하여』. 흐름사. 1979)

스물아홉의 아까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의 시가 문득 내게로 왔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결성한 「자유시」 동인에서 그는 박정남, 박해수, 이기철, 이동순, 이태수, 이하석, 정호승 등과 함께 활동했다. 시 쓰는 행위를 '나는 나의 내장에, 구형의/ 작고 빛나는 못을 박는다'(「시간」)라고 표현하는 그 시작업의 치열함은 시 전체에 스며 있다. 이 시는 시를 기다리는 시인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치열한 것이었나를 우리는 본다. 시를 문장의 단축과 이미지의 결합, 잘 다듬어진 메시지의 전달이라고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말의 감촉과 냄새, 빛깔, 소리를 찾으려는 시인의 노력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건 심미주의와 거리가 먼, 시인만의 노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서는 표절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시'와 '시 아닌 것'만 있을 뿐. 너무 일찍 그가 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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