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춘 스크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인간적 로봇의 따뜻함 VS 기계적 인간의 무자비

#1편에서 4편까지 압축 전개

#'최강' 변신 과거·미래 여행

#60대 노익장 배우 아널드

#악당 이병헌 액션 등 볼만

'터미네이터' 5편이다. 1편의 배경이 된 1984년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결전의 날인 2017년으로 날아가서 비극을 중단시키고자 하는 인간과, 그와 동행하는 인간적인 로봇의 활약이 펼쳐진다.

전설의 시작이었던 제임스 캐머런의 '터미네이터'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SF 액션 영화로 1984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는 CG 기술이 구현되기 이전이었지만, 미래에서 온 기계 '터미네이터'라는 무자비한 신개념 캐릭터를 통해 SF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편은 평범한 여성에서 미래 영웅의 어머니가 될 운명을 가진 여인 '사라 코너'와 미래에서 온 고독한 해방 전사 '카일 리스', 인정사정없는 기계 '터미네이터 T-800'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보여주는데, 영화의 복잡하게 꼬인 시간관념이 관객을 충격에 빠뜨렸다. 난해한 시간성과 나약한 인간의 숙명, 현실의 불완전함, 어둡고 비관적인 미래 등이 얽힌 이 새로운 영화는 SF 장르에 품격을 한껏 더했다.

많은 사람들이 SF 최고 걸작으로 꼽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1991)은 어느 형체로든 자유자재로 위장할 수 있는 액체 터미네이터 T-1000의 등장으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T-800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로봇 영웅의 면모를 담았다. 또한 평범한 여성에서 영웅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강인한 전사가 되어가는 여성 영웅 사라 코너의 변신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한다.

이번 영화는 1편에서 4편까지가 압축되어 전개된다. 심판의 날 이후 기계들이 지배하는 2029년, 인간 저항군의 리더 존 코너는 사람들을 이끌고 로봇 군단 스카이넷에 맞선다. 이에 스카이넷은 존 코너의 탄생을 막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존 코너의 부하 카일 리스가 뒤를 따른다. 이미 어린 시절 T-800을 만난 사라 코너는 로봇과의 전쟁을 준비하며 카일 리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와 함께 제니시스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막기 위해 2017년 미래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난데없이 존 코너가 나타나고, 그는 나노 터미네이터 T-3000으로 변해 있었다.

과거로 간 1편과 2편, 미래로 간 4편이 적절하게 짜깁기 되어 다시 전개되니, 영화는 갈 길을 헤매고 만다. 사상 최강의 적을 만들기 위해 인류 해방의 지도자 존 코너를 변신시킨 선택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근간을 뒤흔들어 버린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인간적인 기계가 된 로봇의 따뜻한 면과, 기계가 된 인간의 끝 모를 무자비함의 대비를 통한 카타르시스다. 영화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을 통제 사회의 암울한 초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현실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깊은 통찰력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시리즈를 통해 특급 스타가 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60대 후반의 몸으로 다시 T-800 로봇의 액션 연기를 펼치며 시리즈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사라 코너로 낙점된 행운의 스타는 미드 '왕자의 게임'의 '대너리스' 역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에밀리아 클라크이다. 거기에다가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이병헌이 무자비한 악당 T-1000으로 등장한다.

CG 기술로 말미암아 이번 영화에서 60대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젊은 아널드와 맨손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병헌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강렬한 눈빛 하나로 좌중을 압도하는 존재감 있는 악당 역을 소화한다.

제임스 캐머런 시대의 '터미네이터'가 보여줬던 복잡하기 그지없는 시간성에 대한 철학적 묘사, 인간의 삶과 운명이 가져다주는 숭고한 비애감이 밑바탕에 깔린 한 판 화끈한 액션과 현란한 시각성은 이제 힘을 다한 듯 보인다. 다만, 여전히 액션 배우로서 노익장의 최선을 다하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영화평론가·용인대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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