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름 쓸 권리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누가 이름을 함부로 쓰는가'에 더 주목할 때다. 남의 이름은 물론 자기 이름도 함부로 쓰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초상권과 달리 이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름 상호나 상표가 보편화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다.

이름이나 고유명사를 둘러싼 분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마존'이다. 최근 외신은 아마존사가 인터넷 도메인 '닷아마존'(.amazon) 권리를 갖기 위해 국제 인터넷주소관리기구에 두 차례나 소유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브라질'페루 등 아마존 강 국가들의 반발 때문인데 아마존이 개인기업의 영업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국내서도 개인 이름의 상표등록이 증가하면서 분쟁도 늘고 있다. 이미 등록된 개인 이름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하다 피소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최근 법원은 '한경희'라는 이름을 임의로 사용한 청소업체에 대해 ㈜한경희생활과학에 8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허락 없이 '한경희청소'라는 상호로 영업을 했다는 이유다.

실제 동명이인의 경우도 문제가 될까? 이름 상표는 하루라도 더 빨리 출원한 쪽에 우선권이 있다. 등록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내 이름 내가 쓰는데'라며 함부로 쓰다가는 상표권 위반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과 직계가족의 이름까지 상표 등록했다. 삼성은 2006년 '이건희' '李健熙' 등을 특허청에 상표 출원하고 최근 손자'손녀 이름까지 모두 39개의 이름을 상표 등록했다. 일가 이름의 상업적인 도용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다.

그저께 한 치킨 프랜차이즈업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광고에 사용하다 혼쭐이 났다.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했다는 비난은 접어두더라도 동의 없이 상업적 용도로 쓴 것은 한마디로 상식 이하다. 논란이 커지자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은 "최대한 사과는 받되 동네 가게 점주들을 생각해 불매운동은 하지 말자"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름 상표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커지면서 법적 권리까지 일일이 따지는 시대다. 고의는 아니겠지만 전직 대통령을 우습게 만들고 초상권까지 침해한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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