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네그로스 오리엔탈주도인 두마게테시에서 차로 30여 분 거리로 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발렌시아 지역. 이곳에서 다시 트럭을 타고 곳곳이 비포장인 산길을 40분 달려야 도착하는 말라보초등학교. 학생 100여 명이 다니는 자그마한 산골학교다.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계명대학교 카리타스 봉사단 34명이 이곳을 찾았다. 말라보초교는 6학년이 되면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다. 앉아 공부할 교실이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을 포함해 5학년까지 2칸짜리 '콩나물 교실'에서 공동 수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발렌시아에 있는 간디국제학교 양희규 교장이 모교인 계명대를 찾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알려, 이번 봉사단 방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계명카리타스 봉사단은 전체 교직원이 매달 급여의 1%를 사랑나누기 기금으로 내서 운영한다. 특히 이번 필리핀 방문은 봉사단의 첫 해외 활동으로 교수, 직원, 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봉사하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됐다.
이들은 현지에서 8일 동안 말라보초등학교의 교실 1칸을 짓는 노력봉사 활동과 현지 학생 및 주민들을 초청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봉사단은 발렌시아 간디학교 기숙사에 묵으면서 매일 오전 8시 30분쯤 현장에 도착해서 오후 5시까지 '강행군'을 했다.
교실 바닥 미장, 운동장 평탄화 작업, 기존 학교 건물을 포함한 도색, 벽화 그리기 등 임무를 나눴다, 남자들은 쉴 새 없이 모래와 자갈, 시멘트를 반죽해 나르며 비지땀을 흘렸다. 봉사단원 중 유일한 외국인 로만(독일어문학전공) 교수는 "대학 구성원들과 두루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봉사단에 참여했다"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외국인이라서 못한다는 이미지를 남기기 싫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는 큰 키를 이용한 도색 작업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 '카리타스 머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은지(패션디자인전공) 학생을 조장으로 하는 벽화팀은 교실 바깥 벽면 3곳에 스펀지 밥, 톰과 제리, 로라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또 한쪽 벽엔 천사의 날개를 그리자 많은 학생, 주민들이 몰려 포즈를 취하는 등 동네 명소가 됐다.
홍숙(보건진료센터) 과장은 아이들의 개인위생 관리 소홀을 안타까워했다. "벌레에 물린 뒤 방치해 피부가 곪거나 발가락 상처가 특히 많았다. 20여 명에게 약을 발라주었더니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중엔 수술이 필요한 아이도 있어 가슴 아프다"고 했다.
10일 오후엔 봉사단원들이 한국에서 준비해 간 기증물품(학용품, 운동용품, 생활용품, 티셔츠 등)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또 음식을 마련해 주민 250명을 초청, 문화 공연과 마을잔치를 열었다. 이 지역 학생들은 제대로 형식을 갖춘 공연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흥겨운 K-POP 공연에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무용학과 오혜인 학생의 한국 무용과 박시진, 서재봉 학생을 중심으로 한 태권도 시범 공연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이틀을 더 일하고 13일엔 신축 교실 준공식이 열렸다. 네그로스 오리엔탈주 교육감도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용일 계명카리타스 봉사단장은 "단원들이 사랑과 희생의 봉사정신을 발휘해 말라보초교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장차 필리핀의 지도자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
준공식이 끝난 뒤 아름다운 나눔이 이어지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유선훈(국제통상학과) 학생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한 아이를 위해 별도로 공을 선물하자, 로만 교수가 가지고 온 용돈을 모두 꺼내 학교 측에 기탁했다. 신상헌(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교실에서 시청각 교육에 활용하라고 대형 벽걸이 LED TV 5대와 DVD를 기증했다. 김용일 단장은 말라보초교 결식아동의 1년치 점심을 후원하고, 똑똑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12명의 학생이 고교 졸업 때까지 필요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 전미향(교양교육대학) 교수는 발렌시아 지역 '쓰레기 마을' 주민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재봉틀 구입 비용을 약속했다.
또 이해민(교양교육대학) 교수는 자신이 입지 않는 옷 20여 벌을 준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다른 교직원과 학생들도 개인적으로 양말, 머리띠, 운동 유니폼, 스티커 등을 가져와 그동안 정든 아이들에게 전해주며 석별의 마음을 달랬다.
홍지원(회계학과) 학생은 "1주일 동안 준비한 문화 공연을 주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사람으로 인해 감동을 느꼈다. 봉사는 상대뿐만 아니라 나도 행복해긴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필리핀 두마케티에서 이석수 기자 sslee@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