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500년 전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세계 3대 명인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 국가들의 정치철학 이념인 유학(儒學)의 학문적 기틀을 완성한 인물이다.
당대의 유학은 종교나 철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단순한 도덕적 사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학사상을 기반으로 후대에 걸쳐 배출된 맹자, 주자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를 집대성해 완성한 것이 성리학(性理學)이다.
한국 성리학의 시발점은 선비의 고장 영주 순흥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서원은 공자를 모시나, 한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비조(鼻祖·어떤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 회헌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모신다. 한국 유학의 학문적 기틀이 된 공자의 사상과 이념을 둘러보기 위해 대만 타이베이시에 있는 공자묘를 찾았다.
◆타이베이 공자묘
타이베이시 위엔산역 바로 앞에 조성되어 있는 오래된 나무들은 마치 공자가 이곳 나무그늘에 앉아 그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했을 것 같은 느낌을 던진다. 타이베이시 공자묘에 들어서면 웅장한 중첨 헐산식 기와와 정교하고 다채로운 장식들이 가득해 눈을 뗄 수가 없다. 지붕 처마와 기둥 등의 조각, 그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중 저온에서 구워 만들었다는 유채 교지(交趾) 자기는 인상적이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와 예에 대해 묻는 장면, 도연명이 국화꽃을 따는 장면 등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어 즐거움 속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공자묘의 입구는 횡문이다. 건물의 전체 규모와는 달리 입구가 작다. '횡문'(서쪽문)과 '반궁'(동쪽문)은 모두 공자묘의 대문으로 좌우에 각각 위치한다. 현재의 공자묘는 광서 5년(1879년)에 대북부(臺北府) 성을 건설하면서 성 안쪽 남문 내에 문묘와 무묘를 건설했고 두 사당은 모두 남향으로, 문묘는 왼쪽, 무묘는 오른쪽에 세워졌다.
하지만 갑오전쟁으로 일본군이 들어와 공자묘(孔子廟) 내에 주둔하면서 공자와 선현의 위패가 다수 파기됐고 의구(儀具)와 악기 등도 유실됐다. 하지만 1925년 1월, 타이베이 인사들과 기업가 200여 명이 뜻을 모아 부지 1만3천754㎡에 건물면적 5천280㎡ 규모로 공자묘를 다시 세웠다. 이곳에는 대성전과 의문, 숭성사 등 3대 전각과 동무, 서무, 영성문, 예문(禮門), 의로(義路), 횡문, 반궁(泮宮), 반지(泮池)와 만인궁장(萬仞宮牆)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공자의 주요 가르침인 육예(六藝)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사방에 회랑(신성한 곳을 둘러싸기 위해 설치한 집)을 설치해 합원을 이뤘고 동쪽에 동무, 서쪽에 서무, 남쪽에는 영성문, 북쪽에는 숭성사(崇聖祠)가 감싸고 있다.
▷만인궁장
공자묘의 정남쪽 높다란 벽(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벽)은 공자묘에 없어서는 안 될 '만인궁장'이다. 만은 수량이 많다는 뜻이고, 인은 옛날 시간을 계산하는 단위다. 공자의 덕행과 학문이 넓고 높음을 의미한다. 공자의 심오한 학문과 도덕적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지름길은 없고, 그저 횡문과 반궁(고대의 학교를 칭함)을 자주 드나들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이베이시 공자묘의 만인궁장은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이 직접 썼다. 네 글자는 바깥벽에 쓰여 있고 담 안쪽에는 기린(어진 짐승)의 채색 도안이 있다.
만인궁장 옆에는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원숭이가 몸짓으로 말하고 있는 이 조형물은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반교와 반지
만인궁장 뒤편에 있는 반월형 연못이 '반지'(泮池)다. 반월형 연못은 주택이나 사찰 앞에 설치해 재해 방지나 열 조절 및 풍수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공자묘의 '반지'는 학교 부근의 연못이란 뜻으로 '반궁의 물'이란 뜻도 있다.
반지 중앙에는 삼공석(三孔石)의 아치형 다리인 반교(泮橋)가 들어서 있다. 무지개처럼 휘어진 다리 바닥에, 돌로 만든 대나무 마디 모양의 난간이 양쪽에 있고, 다리 어귀 난간에는 높은 절개와 문운의 진흥을 상징하는 붓 모양 교각 기둥이 장식돼 있다.
반지 위의 반교에는 옛날 진사과에 합격한 이 지역 장원급제자가 공자 제사 때 반교를 건너, 영성문과 의문(儀門)을 통과한 후 대성전(大成殿)에 올라 제사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학문의 도장 명륜당
공자묘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관광안내소가 제일 먼저 내방객을 맞는다. 안내소는 공자묘뿐만 아니라 타이베이관광과 관련된 각종 안내서비스를 중국어와 영어, 일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로 서비스하고 있다. 팸플릿도 비치돼 있다.
고대의 공자묘는 '학묘'(學廟)식 건축으로 옆에는 반드시 학교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공자묘 옆에 명륜당(明倫堂)을 지어 경전을 강습했고, 학생에게 인륜의 도(人倫之道)를 가르친 곳이다. 1956년 완성된 이곳 명륜당은 강연홀과 도서실, 진열실 등 고대강당의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강좌와 독경, 서예, 남관(南管) 교육에 필요한 각종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이 많다 보니 작은 기념품 판매소도 운영한다. 명륜당을 나와 왼쪽으로 들어서면 공자묘의 본당인 대성전이다.
▷대성전
본당인 대성전(大成殿)은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의 위패가 안치된 곳으로 좌우 벽쪽으로는 4배(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12철(민손, 염옹, 단목사, 중유, 복상, 유약, 염경, 재여, 염구, 언언, 전손사, 주희)의 위패를 모셨다. 대성전 안 천장에는 팔각형 장식 천장이 있다. 모두 24개의 두공(대들보나 도리에 가해지는 무게를 모아 기둥에 전하는 결구물)을 중앙을 향하도록 4단을 쌓은 후, 다시 16개의 두공을 천장 중심으로 모아 만든 방사형이다. 네 귀퉁이에는 '복을 내려준다'는 박쥐 장식이 있다.
대성전 입구인 영성문 중앙에는 용이 휘감은 모습을 한 한 쌍의 정교한 돌기둥인 반용석주(蟠龍石柱)가 있고 영성문 문짝에는 108개의 돌출된 장식 못을 박고 있다. 영성문과 대성전의 가구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두 목조의 풍격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축조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성전 앞은 단지라는 붉은색 연단으로 되어 있다. 공자 석전대제 때 이곳에 악기를 올려놓거나 일생들이 무용을 펼친다고 한다.
연단 전방에는 고대 황제가 바깥으로 외출할 때 가마를 타고 출입하는 길이라는 어로가 있다. 대성전의 구조는 웅장하고 근엄해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해지게 할 정도다. 지붕 용마루에는 72마리의 불효조(올빼미)라 불리는 악조(나쁜 새)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공자가 유교무류(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라 하여 나쁜 새들마저도 포용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대성전 너비는 5간(間)이며, 앞쪽에서 뒤쪽까지는 6간으로 42개의 대형 석조 기둥을 사용했다. 대성전 중앙에는 한 쌍의 걸작이라 불리는 정교한 솜씨의 반용석주가 있다. 이 돌기둥 조각은 모두 취앤쩌우 후이안(惠安) 일대의 조각가들이 만든 것으로, 힘 있고 투박스럽고, 섬세하며, 고풍스럽지만 일반 사찰의 조각과는 사뭇 다르다. 특이한 것은 대성전 용마루 중앙에 7층 보탑이 있고, 제비꼬리 모양으로 솟은 2개의 통 모양 장식이 있다. 보탑은 악귀를 누르는 상징이고 원통형 장식인 통천통(선비들이 문서를 보관하는 통)은 존경의 상징이다.
◆대만은 공자의 나라
공자의 후손은 대만에 살고 있다. 장제스 총통이 1949년 공자 후손들을 대만으로 피신시켜 77대손부터 79대손이 살고 있다.
대만 정부 역시 공자 유교문화 보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공자 유교문화 유적 보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유적 복원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또 공자의 사상과 정신을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해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문화재 보수 사업을 추진하면서 나온 부자재를 현장에 전시 보존까지 하고 있다.
진채홍(陳彩虹) 타이베이시 관광전파국 과장은 "공자의 후손은 대만에서 만날 수 있다"면서 "탤런트를 만나야지 탤런트가 살고 있는 집을 보러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영주시도 성리학의 비조 안향 선생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유는 유교문화의 본향인 영주를 집중 조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원 영주시 부시장은 "한국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교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족 전통의 상징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대만이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보수하고 남은 부자재까지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놀랐다. 우리도 실천하고 노력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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