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름 따라가는 정치 희로애락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겐 이름이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이다.

이런 이유로 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인사 중에는 예명(藝名)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유권자들의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에게 이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경북지역 현역 국회의원 중에도 어린 시절 이름을 바꾼 덕분인지 국회의원 3선의 '관운'(官運)을 누리고 있는 이도 있다.

지난 1993년 개봉된 미국 영화 '제이제이'는 정치인에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전문 사기꾼 토마스 존슨은 동명이인(同名異人) 국회의원이 사망하자 그의 이름과 지명도를 빌려 얼굴은 나타내지 않고 이름만 내건 선거운동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유권자들이 습관적으로 친근한 이름에 투표하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황당한 얘기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가 극에 달한 현실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실세 비서관과 이름 같아 작년 지방선거 때 큰 도움

지역에도 이름 덕을 톡톡히 본 정치인이 있다. 2014년 동시지방선거에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당내 경선에 출마해 선전한 이재만 전 동구청장은 박근혜정부의 실세 비서관으로 평가받는 동명이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지지(?)를 등에 업은 바 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이재만 전 구청장은 "본의 아니게 지난 지방선거 당내 경선에서 동명이인의 도움을 받았다"면서도 "정윤회 문건 파동 때는 걱정하며 연락을 주신 분들에게 일일이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해명을 해야했다"고 말했다.

◇野 권은희 의원 동명이인 "검찰출두 아닙니다" 해명

이름 때문에 우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대구 북갑)이다. 권 의원은 동명이인인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광주 광산을)이 '경찰 수뇌부에 항명' '검찰출두' 등 언론에 불미스러운 일로 거명이 될 때마다 '제가 아닙니다'라는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권 의원이 40대 여성 보험설계사 성폭행 의혹으로 의원직 제명위기에 몰린 심학봉 의원의 부인이라는 황당한 소문까지 인터넷에 떠돌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대부분 언론은 혼동이 없도록 보도를 하고 있지만,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지역민의 꼼꼼한 관찰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홍보 자료에 '대출' 단어 스펨메일 처리 전달 안돼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경남 진주 갑)도 이름 때문에 피곤한 정치인이다. 자신의 의정 활동을 홍보하는 각종 보도자료에 '대출'이라는 단어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스팸 메일로 분류돼 언론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의원은 지난 6월까지 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당의 견해를 밝힌 대변인실 보도자료까지 스팸메일 처리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탁구선수 유승민 더 유명, 초·재선 시절엔 그랬었죠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당선 후 만난 자리에서 정치인과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초'재선 의원 시절에는 정치인 유승민보다 탁구 국가대표 유승민 선수가 더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차분하게 의정 활동을 하면서 역량을 키웠더니 어느새 정치인 유승민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정치인에게 이름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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