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내가 '아이돌 덕후'가 된 이유

이제서야 당당히 말하는 바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음악은 재즈도 아니요, 록도 아니다. 일렉트로니카가 가끔 위로해 주기는 하지만 2순위다. 1순위는 바로 '아이돌 뮤직'이다.

아이돌 뮤직으로 '입덕'(덕후에 입문한다는 뜻)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2011년. 그전에도 아이돌 음악을 안 들은 것은 아니나 '덕후'스럽게 빠진 계기는 2011년이다. 한창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할 때 들은 인피니트의 '내 꺼 하자'였다.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시험 준비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유튜브에 인피니트가 나오는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걸로 해소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 취업 성공의 5할은 인피니트 덕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수습기자와 사회부 기자 시절 나를 위로한 아이돌은 샤이니였다. 2012년 '셜록'을 시작으로 2013년 '드림 걸'을 거쳐 올해 발표된 '뷰'까지 샤이니의 노래는 믿고 들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아이돌 팀은 빅스, 에이핑크, 방탄소년단이다. 빅스는 '다칠 준비가 돼 있어' 때부터 눈여겨보다가 유튜브에 올라온 '빅스TV' 콘텐츠를 밤새워 몰아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에이핑크는 뭐든 잘 먹는 멤버 윤보미를 이상형으로 꼽을 정도다. 특히 올해는 방탄소년단에 올인하다시피 했는데, 올해 나온 노래 'I need you'가 썩 괜찮다는 생각에 자주 듣다가 어느 순간 유튜브에 이들이 나온 영상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찌 보면 '그냥 좋아서' 빠진 것이라 "왜 그런 음악 듣느냐"라고 따져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답을 요구한다면 "이런 음악도 안 듣고 사시는데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시냐"고 반문하겠다. 굳이 이유를 하나 대자면, '직업인으로서의 연민'도 포함돼 있다고나 할까. 어린 나이들이고, 항상 밝은 모습이 의무이고,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편견과도 싸워야 하는 고달픈 삶이 어느 부분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기자도 기사 잘못 쓰면 욕먹고, 매체 성격에 따른 편견과도 싸우며, 품위와 날카로움도 항상 보여줘야 한다. 문제는 이런 덕목들을 지키며 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들이 짊어져야 할 광대로서의 직업적 숙명이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면서 드문드문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너네들도 힘들게 사는구나. 밥 한 그릇 사주고 싶다'는 뭔가 애잔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동생을 흐뭇해하는 동네 형 또는 오빠'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어차피 청소년들 틈바구니에 끼어 팬 사인회를 가기도 부끄러운 나이가 됐기에 그저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 많이 들어주고 유튜브에서 영상 많이 보는 초보 덕후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나잇값도 못한다", "변태 아니냐"는 소리를 듣긴 하겠지만 어쩌랴, 그네들을 보면 저절로 삼촌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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