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 한 시간 정도 동네 공원 여기저기를 도는데 파워워킹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등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침 공기를 즐기며 천천히 하늘도 보고 나무 구경도 한다. 비둘기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다 잔디밭에 내려 구구거리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런 시간을 즐기다 보면 마음속에 서서히 떠오르는 게 있다. 평화.
산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마누엘 칸트가 아닐까. 독일의 철학자인 그는 그야말로 산책의 대명사이다. 몸이 약했던 그는 늘 일정한 시간에 동네를 산책하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했다.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그의 산책을 보며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까. 그는 걸음으로써 건강만을 돌본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색이었다. 그가 산책할 때면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항상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시간 동안의 사유를 통해 자신의 철학 체계를 완성해 나갔다. 집을 나서기 전 화두를 잡고 산책하는 시간 내내 골똘히 파헤쳐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도 산책의 고수였다. 그는 유배지인 강진에 다산초당을 열고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을 저술했다. 사상가나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도 산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 또한 산책의 신봉자였다.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의 직업을 산책가라고 하기도 했다.
이들이 산책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뭘까. 사람이 걷는 행동을 하면 뇌로 가는 혈류가 증가해 뇌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우리가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해 운동을 하듯이 산책은 말하자면 뇌를 튼튼히 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뇌 운동인 셈이다. 혼자서 조용히 길을 걷다 보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바로 철학자나 과학자, 작가들이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도 지나고 나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졌다. 이젠 낮에도 그리 더운 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나마 잠시 짬을 내어 걸어보자. 철학자나 사상가, 과학자나 작가처럼 뭔가 위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떤가. 조용히 상념에 빠져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떤가. 바쁜 일상에 찌든 뇌에 그냥 휴식을 주는 것만도 나쁘지 않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게 해주면 뇌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게 된다. 몸을 튼튼히 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뇌를 튼튼하고 가장 맑게 유지하는 것도 어느 것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다.
세상이 어지럽기 그지없다. 곤두박질하는 경제도 머리를 아프게 하는데, 정치도 국방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조용히 산책을 하며 잠깐의 평화라도 얻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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