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2] 여성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

올해 2월 2일 대구 남부경찰서 동대명지구대 2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2자가 세 번이나 겹쳐 왠지 예감이 좋았다. 아직도 뛰어다니는 현장이 좋아 순찰 팀원으로 내려갔다가 정확히 5년 만에 복귀한 셈이다. 경찰에 입문한 지 어언 34년째,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아귀다툼의 현장에서 푸른 젊음을 소진하고 이제 노병의 한 사람으로서 돌아보는 뒤안길에 마주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서울·부산·대구 3개청 8개 경찰서를 거쳐 왔지만 남부서 동대명지구대는 유독 여성 관련 사건이 많다. 아마도 그것은 학교가 많고 주로 빌라와 주택 밀집 지역으로 이루어져 범죄로부터 사각지대가 많은 탓이리라. 영남대 의대,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 대구교대, 영남이공대 등 대학 5개교에 대구고, 심인고, 경북여상, 대구여상, 경북예고 등 고교 5개교가 위치하여 1개 지구대에 학교 수가 많기로는 초'중학교를 제외하고도 전국 1위는 될 것 같다.

지난 6월 초순 지구대 합동 조회 시간 중 관리반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신고입니다. 빨리 내려오세요!"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니 인근 삼각지네거리에 위치한 빌딩 8층에서 '30대 남자 1명이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한다'는 내용.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급히 순찰차 4대 모두 현장에 도착한다. 건물 옥상을 수색하면서 자살기도자를 찾던 중 이번에는 약 500m 떨어진 인근 빌라에서 '어느 여성이 위급하다'는 신고가 연이어 떨어진다. 우선 순찰차 2대를 급파했다. 남은 인원으로 빌딩을 수색하던 중 최종적으로 자살신고가 해프닝이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빌라 쪽으로 향한 순찰차 근무자의 다급한 무전 소리가 들린다. 옆에 있던 직원 한 명이 "팀장님! 직원이 칼에 찔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지난번에도 신고가 들어왔던 곳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빌라 5층에 도착해보니 원룸의 문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 목이 졸린 20대 여성이 질식으로 입에서 하얀 거품을 거푸 내뱉고 눌린 목에는 붉은 큰 반점이 선명했고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상황은 이랬다. 교제를 거절당한 남자 친구가 앙심을 품고 피해자인 여자 친구를 살해하기 위해 빌라 앞에 숨어 있다가 외출하려고 밖으로 나오던 피해자를 강제로 원룸 안으로 밀어 넣고 목을 조른 것이다. 다행히 피해자가 휴대전화 단축키를 눌러 주인아주머니에게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주인아주머니가 급하게 신고했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우리 팀원들은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에 불응하고 안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몹시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 원룸의 시정장치를 부수고 범인을 현장에서 살인미수혐의로 체포했다. 울산의 먼 곳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대구까지 유학을 와서 홀로 원룸에서 생활하던 그녀로서는 청천벽력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다 극적으로 구출된 것이었다. 신속히 119구급대로 피해자를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하고 범인은 지구대로 압송했다.

소위 '빠루 구출작전'이라 불린 이번 여성 살인미수 사건은 전반기 메르스와 더불어 대구 경찰 내에서 화제가 집중된 사건이었다. 바로 두 화제의 진원지가 바로 동대명지구대 관내였던 것도 우연의 일치였다. 그날의 공로로 특진한 젊은 후배와 지방청장 표창을 받은 부팀장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지난봄에는 개학을 하고 멀리 전북 전주에서 유학 온 한 여대생을 별거하는 아버지가 가족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에 격분하여 "죽인다"며 지속적으로 학교 근처를 맴도는 것을 여성통합수사팀과 법원 등에 연계해 안전하게 보호처리한 건, 관내 빌라에서 '여성이 자살 시도한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단서라고는 이름 하나만을 가지고 인근 빌라를 수색, 대상자의 주거지를 알아내 부엌칼로 왼쪽 손목을 그은 20대 여성을 긴급 구출한 건, 내연남의 괴롭힘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온 한 여성의 잦은 신고를 접하고 상대방을 의법 조치한 후 피해 여성을 설득시켜 원래의 가정으로 되돌려 보낸 건 등도 있었다.

사실, 지역 경찰은 여성 상대 범죄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사건 사고 현장에는 어김없이 우리가 나타난다. 긴급한 신고와 급박한 상황으로 촉각을 다툴 때 현장에서 팀원들은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최강 동대명 2팀임을 자부한다.

무언의 다짐 속에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수많은 시민들과의 온종일 부침이 끝나면 하나 둘 귀대하는 순찰차를 볼 때마다 진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팀원들을 격려한다. '수고했다 파이팅!' 한없는 마음의 하이파이브를 외친다. 순찰팀장의 진정한 역할은 밀리고 어려우면 받쳐주고 밀어줘야 하고, 신바람으로 치고 나갈 때는 절묘한 패스로 연결해 줘야 하고, 비어 있는 뒷공간도 메워줘야 하고, 때로는 어려움에 처해 막힐 때는 핵심의 맥도 짚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병은 죽지 않았고 남은 3년 안에 결코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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