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9] 죽은 이와의 만남

지난해 겨울 한 화재 현장. 불길이 겨우 잡힐 때쯤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람들의 외침에 긴장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현장 정리를 하고 소방서로 귀소하는 내내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2014년 12월 4일 어느 추운 겨울 밤.

평온한 수성소방서 청사 내 화재출동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출동 벨이 울렸다. 몸이 조건반사처럼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방화복을 갈아입으며 소방차량으로 향하는 동안 심장박동이 크게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에 탑승하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소방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사이렌 소리와 내 심장박동 소리가 일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차 안에서 공기호흡기와 면체를 점검하고, 공기호흡기를 착용하면서 큰 화재가 아니기를 빌며, 나의 안전도 함께 기도했다.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금방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은 불구경하러 나온 주민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붉은 화마의 모습이었다. 먼저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이미 화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일반 주택이었다. 불은 이미 벽면부터 지붕까지 모든 곳에서 진화하기 힘들만큼 타오르고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 구조라 그 상황에 건물로 진입해서 진화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거기다 하필 그곳은 깊숙한 시골에 경사가 심해서 소방차가 진입하기 힘든 곳이라 소방호스를 몇 개씩 연장해야만 방수를 할 수 있었다.

뒤이어 온 소방대원들은 호스로 불길을 진화하는 데 최대한 보조하면서 도움을 주고, 나머지는 경사 아래쪽에서 호스를 연장해서 다시 끌고 가서 여러 방향에서 방수를 실시하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샌드위치 패널로 된 지붕이 완전히 무너지며 전소 되었다. 전소와 함께 불길은 거의 잡혔고 이제 잔불 정리를 하면 되겠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노인 한 분이 있습니다!" 순간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미 집은 완전히 불에 타버렸고, 유독가스가 집 안 내부에 가득 찬 상황에서 생존 확률이 거의 희박한 상황이었다. 인명검색을 위해 대원들의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빨라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가족들은 이미 체념한 듯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불길이 사라지자 고요함과 긴장이 풀리면서 느껴지는 추위로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우리 대원들은 0.1%의 생존 확률이라도 남아 있을 거라 믿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지붕을 파괴하고 방이 있던 공간으로 파악되는 곳들을 샅샅이 살폈다. 혹시나 발아래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장비를 이용하여 잔불 정리와 동시에 건물 잔해를 살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건물 뼈대를 들어내고 이리저리 잔해를 헤치면서 인명 검색에 나섰다.

구조대원들이 건물 중심 부분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 센터 대원들은 화재 시 피난 가능한 동선 중심으로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몇 가지 잔해를 헤치던 중 아래쪽에 마네킹과 비슷한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였다. 현장 출동 중 마주한 '죽은 이'였다.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다른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찾았다는 안도감일까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일까, 그런 감정을 느낀 찰나 구조대원들에게 발견 상황을 무전으로 연락하였다. 구조대원들이 오고 사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족들에게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점점 조용해지던 가족들의 울음이 그 소식과 함께 오열로 변하였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조금만 더 빨리 왔었더라면 구할 수 있었을까? 건물 구조가 샌드위치 패널이라서 연소가 빠르게 확산된 것일까? 위치가 높은 경사에 위치해 있는데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한 이런 지역에는 어떤 방법을 써야 가장 빠르게 진입할 수 있을까?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죽은 이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언가 거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다. 현장 정리를 하고 유족들을 뒤로하며 소방서로 귀소하는 내내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사무실에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생각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았다.

죽은 이와 마주하고 난 후, 삶의 소중함과 그 소중함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을 하며 나 자신을 더 발전시키고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위험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소중한 생명을 위해 나는 더 훈련하고 더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지금 이 순간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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