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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향 최석채는… 명사설 '학도를 도구로' 로 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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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권력에 일평생 붓끝으로 저항

몽향(夢鄕) 최석채(崔錫采)는 1917년 11월 21일 경북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김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는 등 어린 시절을 김천에서 보낸 몽향은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다. 1942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를 졸업한 뒤 잡지 '법제'(法制)의 편집기자로 언론과의 첫 인연을 맺는다.

광복 후 몽향은 1946년 대구에서 발행된 잡지 '건국공론'(建國公論) 편집부장과'부녀일보'(婦女日報) 편집국장을 맡는 등 언론과의 인연을 이어가다 1949년 경찰에 투신한다. 성주'문경'영주 경찰서장을 역임하다 6'25전쟁 중 부산에서 일어난 5'26 개헌 파동 소식을 접하고는 경찰직을 내던진다.

1954년 몽향은 대구일보 부국장으로 다시 언론인의 길을 걷는다. 이듬해 2월 매일신문으로 옮겨 편집국장, 그리고 주필이 된다. 주필이 된 지 4개월 만에 명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로 필화를 당한다.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의 무죄 확정을 받지만 정권의 계속된 압력으로 1959년 결국 매일신문을 떠난다.

1959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몽향의 붓끝은 살아 움직인다. 사설 '호헌 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국민이여 총궐기하자' 등 명논설을 잇따라 쓰며 독재 권력의 횡포에 저항한다. 1971년 12월 몽향은 국가보위법이 날치기 통과되자 '신문은 편집인의 손에서 떠났다'고 개탄하며 조선일보 주필 자리를 내던진다. 이후 문화방송'경향신문 회장, 신문편집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다.

몽향은 22년 만에 명예회장직으로 매일신문으로 돌아와 1981년부터 1987년까지 6년간 매주 수요일 '몽향 칼럼'을 집필하며 평생 붓을 놓지 않는다. 1991년 74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1977년 금관문화훈장과 2000년 국제언론인협회(IPI)로부터 '세계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 50인'에 선정된다. 저서로는 '서민의 항장', '한국의 신문 논리', '일제하의 명논설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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