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귀향(歸鄕)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한 사자성어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도 제가 태어난 모천(母川)으로 돌아와 삶을 마감하는 회귀본능을 지니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동물의 이 같은 본능을 '솔라 콤파스'라고 일컫는다. 일종의 태양 위치를 통해 방위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도 동물처럼 귀소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돌아온 탕자'처럼 사람은 누구나 타향에서 심신이 지쳐 있거나 외로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일수록 귀향 모티브가 더 강하게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쟁이나 변란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자의 귀향이나 죽은 넋들의 애틋한 사연이 귀소본능과 맞물려 문학'예술의 주제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은 특히 귀소 의식이 강한 민족이라고 한다. 내우외환을 많이 겪은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한 특성일 것이다. 비록 고향 땅을 밟지는 못하지만 혈육 간의 상봉을 통해서라도 고향의 흙냄새를 맡으려는 실향민의 염원은 그 눈물겨운 현장이다.

후원자의 정성을 모아 13년에 걸쳐 촬영한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은 일본군 성 노예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소녀들의 원혼이나마 고향으로 인도하고 싶은 염원을 담았다. 그래서 귀향(歸鄕)이 아닌 귀향(鬼鄕)이다. 얼마 전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희생자 115인의 유골이 70년 만에 고국의 품에 돌아왔다. 뒤늦게나마 타국을 떠돌던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고 영면을 기원하는 합동장례식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를 언론에서는 '70년 만의 귀향'이란 제목을 붙였다.

추석을 앞두고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귀향(歸鄕) 행렬이다. 그러나 오랜 그리움에 비해 고향에서 머무는 시간이나 가족친지 간의 만남은 그저 잠시뿐이다. 수도권이나 먼 곳에서의 귀향일수록 그렇다. 교통 체증 때문에 건성으로 들렀다가 바쁘게 돌아서기 일쑤인 고향길. 그게 작금의 귀향 풍속도이다.

하긴 고향도 홀로 계신 어머니처럼 늙었다. 어릴 적 뛰놀던 산천은 그대로인데, 울 너머 옛 친구 집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고샅길에 만나는 생경한 얼굴에서 옛정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찍이 정지용 시인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 푸르구나'라고 노래했는가 보다. 그래도 고향의 존재와 그리움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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