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암행일기/박만정 지음/윤세순 옮김/서해문집 펴냄
1695년(숙종 21년) 7, 8월 충청도 지방에 폭우가 내렸다. 진주 지방에는 눈이 내리고, 전국 고을에 밤마다 서리가 내려 심각한 흉년이 들었다. 이 때문에 추수기인 가을에도 곡물 값이 치솟았고, 민심은 흉흉했다. 임금은 대신들과 구황 대책을 논의하고, 과거와 같은 국가 행사를 연기했다. 은자(銀子) 1000냥을 진휼청에 내려 구휼을 돕도록 했다. 1696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경기도를 제외한 전국 7개 도에 암행어사를 파견해 실정과 민의를 살피도록 했다. -숙종실록-
박만정은 1696년 3월 7일 암행어사로 임명돼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실정을 살피고, 지방관들이 백성들을 제대로 구휼하고 있는지 알아보라는 명령을 받고 황해도로 떠났다. 그는 60일 동안 황해도에 머물며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이야기, 지방관리들의 업무를 살폈다.
'해서암행일기'는 박만정이 황해도 일대에서 암행어사로 활동하면서 경험한 것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일기와는 별도로 '서계'와 '별단'이 첨부돼 있는데, 이는 임금에게 보고하는 복명서(復命書)다. 서계에서는 황해도 지방관들의 행적을 살펴 잘잘못을 평가했고, 별단에서는 흉년으로 고통받는 황해도 백성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과 개선할 점을 항목별로 썼다. '해서암행일기'가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쓴 비공개 문건이라면, 서계와 별단은 임금에게 제출하는 공식 문건이다.
암행 활동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해서암행일기'에는 보고 들은 기이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첩첩산중에서 들은 이무기 이야기, 자신의 관상을 본 이야기, 돼지처럼 생긴 괴물 물고기 이야기, 어사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사칭한 박희경이라는 인물 이야기, 서해안 여러 섬에 출몰해 물고기를 마구 잡아가는 황당선(黃唐船'아마도 중국 어선인 듯하다) 등 많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서계와 별단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허사 첨사 박지병은 토졸들을 침학한 사례는 별로 없지만,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할 때 공평하게 양곡을 나누어 주지 못해 백성들 중에 간혹 원망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광산 만호 유상만은 토졸들을 불쌍히 여겨 물건으로 은혜를 베풀어 위로했고, 굶주린 백성들이 이리저리 떠돌지 않도록 진휼하는 데 힘써 고을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문산 만호 안필휘는 토졸들을 침학하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지난해처럼 콩 농사가 흉년일 때는 응당 그 해 농사의 잘되고 못됨을 참작해야 하는데도 다만 전례대로 납부하기만을 독촉해 백성들이 원망했습니다. 소강 첨사 이용은 현직에 머무른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기생에게 현혹되어 한 달에 몇 번이나 감영이 있는 해주를 왕래해서 그가 지나가는 각 읍에 적지 않은 해를 끼쳤습니다.'
염탐을 위해 암행어사 박만정은 신분을 철저하게 속였는데, 자신은 충청도 사람으로 흉년을 당해 먹고 살길이 없어 관서 지방의 아는 수령들을 찾아다니며 걸식이나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암행어사 제도는 조선 성종 때 지방 수령들의 비리가 크게 불거지면서 시행되어 19세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삼정(전정, 군정, 환곡제도)의 문란이 심각해 더욱 활발하게 시행되었다. 지방 수령의 악정을 염탐해 밝히고, 민정을 살피는 순기능적 역할을 했으나 중앙정부의 지방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각 도에 부임한 관찰사와 업무가 겹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암행어사에 임명되면 봉서(封書'겉봉을 봉한 임명장), 사목(事目'정해진 규칙), 마패(馬牌), 유척(鍮尺'놋쇠로 만든 자로 지방관청이 세금을 거둬들일 때 쓰는 도량형을 검사하는 표준 자)을 받았다. 봉서에는 감찰할 지역이 명기돼 있는데, 암행어사가 동대문을 나가서 열어보도록 돼 있었다.
지은이 박만정은 1648년(인조 26)에 서울에서 태어나 1717년(숙종 43년)에 사망했다. 세자를 가르치는 관직을 맡았고, 사간원의 사간, 황해도 암행어사, 회양 부사, 영광 군수를 역임했다. 남인으로 장희빈을 옹호하다가 벼슬에서 쫓겨나 직책 없이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숙종이 남인을 멀리할 때도 비교적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지은이 윤세순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 한국학 연구센터 전임 연구원이다. 175쪽, 1만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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