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족이 힘이다] <4>유언 미리 남기기

"나 죽거든…"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켜 줬으니 앞으로는 자립하거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켜 줬으니 앞으로는 자립하거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책 인세로 북한 어린이 돕고 싶다 -권정생-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책 인세로 북한 어린이 돕고 싶다 -권정생-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오드리 헵번-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오드리 헵번-

좋은 죽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겠지만, 이게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면, 스스로 준비하며 자신의 남은 인생을 뜻 깊게 보낼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좋은 '유언'을 미리 남겨두는 것도 웰다잉의 한 방법이다.

◆유언은 나와 가족의 연결고리

유언은 대부분 가까이 있는 사람들, 바로 가족에게 남기는 말이다. 큰 세상과 맞서며 살았던 역사 속 위인들도 생의 종착점에 다다라서는 침대에 누워 애타는 목소리로 가족을 찾았다. 쾌활한 성격으로 평생 전장을 누비다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죽음이 임박하자 당시 실력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목을 부여잡고 울먹였다. "부디 도요토미 가문을 지키고, 어린 히데요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도요토미는 자기 부하들에게 일일이 머리를 숙이며 호소하고 죽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유언은 전혀 철학적이지 않았다. 임종을 지켜준 여동생의 이름만 불렀다. "엘리자베스." 정신분석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프로이트도 죽음에 대한 대단한 분석을 내놓지는 못했다. 진통제를 놔 준 주치의에게 "감사합니다. 안나(딸)에게도 말해주세요"라고 했을 뿐이다.

반대로 가족의 부재 내지는 결핍도 유언으로 드러났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죽기 직전까지 국정을 돌봤다. 그의 유언도 쓸쓸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아주 짧은 한순간을 위한 것이었어." 프랑스의 정복자 나폴레옹은 유배지 코르시카 섬에서 죽음을 맞으며 결국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프랑스, 군대, 선봉, 조세핀." 앞서 나폴레옹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세계를 정복했지만 아내 조세핀의 마음만은 얻지 못했다."

다음 유언은 가족을 중심에 둔 유언일까, 가족을 도외시한 유언일까.

첫째, 손녀인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으로 1만불을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며주길 바라며, 유한동산에는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중'공업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그 어린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 달라.

셋째, 일한(본인) 자신의 소유 주식 14만941주는 전부 '한국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 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켜 줬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의 유언이다. 재벌과 고위공직자들의 유산 상속 관련 비위 세태를 수시로 신문으로 접할 수 있는 요즘에 비춰 보면, 꽤 파격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유언은 유족에 의해 온전히 실행됐다. 유언자의 가치관에 대해 평소 깊이 공감하고 이해해 온 가족에게 이 유언은 그리 파격이 아니었으리라. 즉, 유언은 유언자가 가족과 평생 나눈 소통과 교감의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유언자와 남은 가족을 연결하는 유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상속 다툼 싹부터 없애야 좋은 유언

유언(遺言)의 사전적 뜻은 이렇다.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김, 또는 그 말.'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부분 때문에 우리는 유언을 남기는 시점을 죽음 직전, 즉 임종 때로 흔히 인식한다. 하지만 죽음은 예고가 없다. 최후의 발언을 남길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죽거나, 그런 기회가 왔더라도 주변에 들어줄 사람이 없을 수 있으며, 다행히 가족이 임종을 지키더라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도한 유언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동서고금 가리지 않고 유언을 미리 써 두는 '유언장'을 활용해왔다.

유언장은 기본적으로 '법적 유언장'을 가리킨다. 주목적은 '재산 상속'이고, 그와 관련한 '다툼 방지'를 확실하게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 유언장을 쓸 때 민법 등 법률 지식에 대해 잘 알아둬야 한다.

우리나라 민법 제1065조에 따르면 유언 방식은 모두 다섯 종류가 인정된다.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다. ▷자필증서는 유언자가 직접 쓰는 것이다. ▷녹음의 경우 유언자가 유언을 말로 녹음하고, 증인도 유언이 정확하다는 증언을 녹음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음성이 들어간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도 인정된다. ▷공정증서는 2인 이상의 증인이 참석한 가운데 유언자가 유언을 공증인에게 알려주고, 이를 공증인이 기재하는 것이다. ▷비밀증서는 유언장을 봉투에 밀봉한 뒤 법원 서기나 공증인에게 제출하고, 유언자 사후 개봉하는 것이다. ▷구수증서는 질병 등 급박한 이유로 다른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할 때, 2인 이상 증인이 입회해 유언을 받아 적는 것이다.

◆인생 중간 결산서, 유언장

법적 유언장은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준비할 수 있는 유언장은 생전 자기 자신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가장 비슷한 것으로 에세이(essay)를 들 수 있다. 에세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일기나 메모라고 해도 되겠다. 이 에세이는 결국 누군가 읽게 되고 또한 읽어주길 바라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편지나 자서전이라고 봐도 좋겠다. 모두 평소 기록하는 습관을 필요로 한다. 기록하는 매체는 보통 종이 같은 것이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칭 '에세이식 유언장'이 법적 유언장과 다른 점은 여러 장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적 유언장은 유언 해석 및 실행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단 한 장만 남겨야 한다. 사본조차 효력이 없다. 하지만 에세이식 유언장은 여러 장 남겨도 무방하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은 두 가지 유언장을 남겼다. 하나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5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정호경 신부의 권유로 작성한 것이다. 또 하나는 사망 15일 전에 쓴 것이다. 첫 번째 유언장은 권정생이 평소 작품에 녹여냈던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가득하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거나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젊은 남자로 태어나 젊은 아가씨와 연애를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두 번째 유언장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자신의 책 인세로 북한 어린이들을 도울 것을 밝혔고, 세계의 불쌍한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나타냈다.

◆유언으로 문학하기

유언에 대한 문학적 접근도 꾸준하다. 2009년 한국여성문학인회 소속 여성 문인 112명은 유언 주제 에세이를 모아 문집 '흙으로 가는 아름다운 여행'을 펴내기도 했다. 제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죽음에도 공부가 필요하다(서정란), 버려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들(추은희), 가지고 갈 것도 두고 갈 것도 없다(서정자), 판권을 나누어 주리(박현령), 그믐달처럼 사위고 싶다(이향아), 다시는 어떤 생명으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조선희) 등.

직접 써도 되지만, 다른 문학 작품을 인용할 수도 있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였으며 은퇴 후 세계의 굶주린 아이들을 돌보며 산 오드리 헵번. 그는 미국 시인 샘 레벤슨의 시(詩) 'Time Tested Beauty by Tips'를 그대로 유언장에 인용했다.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라'는 등 촌철의 문장과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등 인상적인 문구로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오드리 헵번의 생애를 잘 은유한다.

시보다 더 짧은 문구를 만들어 평소 말로 하고 다니는 것은 어떨까. 일종의 슬로건 삼아서 말이다. 좋은 사례가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하기 며칠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이 말을 계속 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 이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자기 삶을 되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짧지만 그 울림은 컸다. 이 말이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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