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읽기는 껌 종이와 책갈피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껌 종이에 국내외 시인들의 시나 '킴 카잘리'의 '사랑이란' 같은 글귀가 적힌 껌 종이를 모으기 위해 일부러 껌을 샀다. 언니, 오빠들이 가지고 다니는 참고서나 책에 한두 개쯤 꽂혀 있는 책갈피에는 어김없이 한국의 명시들이 적혀 있었다. 껌 종이와 책갈피에서 읽었던 시들이 그리 어렵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진 덕분인지 언니의 책장에 꽂혀 있던 하이네, 괴테, 헤세의 양장본 시집을 뜻도 모르고 겁 없이 꺼내 읽기도 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국어 시간은 행과 연, 단어와 어절을 분해하고 분석하고 빨간 줄을 긋고, 수미상관 행 연결하기, 핵심 주제와 소재 찾기 등의 시 해부 시간과 다름없었다. 틈틈이 '홀로서기' '접시꽃 당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등 당시 베스트셀러 시집이나, 고 정채봉의 '어른이 읽는 동화' 같은 작품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었던 것은 그것이 유일한 교과서 밖 일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슴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입학 후 문학 강연에서 만난 신경림, 김용택 시인과 지역 출신이기도 한 정호승, 안도현, 곽재구, 도종환 시인의 신간 시집이 나오면 수집하듯이 사곤 했다. 그때 산 시집들은 사상과 철학에 상관없이 나란히 사이좋게 책장을 차지하고 나와 함께 나이가 들고 있다.
요즘은 사람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거나 바르게 경계할 수 있도록 쓴 옛 사람들의 잠(箴)과 옛 글을 번역본으로 읽고 있다. '잠'은 게으르고 나태한 나의 일상을 고치는 침이 되고 있다.(책 '잠(箴), 마음에 놓은 침' 인용)
나의 시 읽기는 전문적이거나 철학적이지 않다. 다만 행과 연 사이에 시인의 살아 숨 쉬는 시 정신과 고민 속에 만들어낸 섬광 같은 시어를 받아들이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좋은 시구를 정확히 외지는 못해도 시인이 풀어낸 절절한 혹은 담담한 마음은 가슴 속에 남아 내 삶의 한 조각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누구에게나 팍팍한 삶의 현장이나, 사랑이 희석되어 간다고 느낄 때 생각나는 시가 한두 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서점의 시집 코너는 직원에게 물어봐야만 찾을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시집 코너가 서점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대구에는 정류장마다 지역 시인들의 시가 실사 되어 붙어 있다. 내가 껌 종이에서 시의 맛을 알았던 것처럼 오늘 어느 정류장에서 누군가는 시를 읽으며 시의 울림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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