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성룡, 주묵 지음/ 허유영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불멸의 액션 아이콘, 성룡(청룽, 재키 찬)이 지난 3년간 쓴 자서전이다. 성룡이 직접 구술하고 친구 주묵이 정리했다. 8살 때 처음 연기를 시작해 예순을 넘긴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성룡의 영화 인생이 정말 영화처럼 펼쳐진다.
성룡은 1954년 홍콩 프랑스 영사관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가정부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룡에게 무술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젊은 시절 무술을 배운 아버지는 어린 성룡에게 틈틈이 무술을 가르쳤다. 성룡은 무술로 또래 친구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먼저 주먹을 날린 적이 있다. 영사관에 함께 사는 소꿉친구인 영사의 딸을 괴롭히고 울린 녀석들을 향해 성룡은 "내 기억 속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위해 주먹을 쓴 일이었다"고 떠올렸다. 이후 영화 속에서 성룡은 연인이든 동료든 가족이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가서는 때로는 얻어터지다가도 끝내 적을 물리치고 만다. 바로 저때가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걸까. '무술'과 '의리', 이미 어릴 적에 성룡 영화의 키워드는 결정됐던 셈이다.
성룡은 7살 때부터 10년간 희극학원 생활을 하며 연기와 무술 실력을 함께 쌓았다. 성룡이 처음부터 스타였던 것은 아니다. 영화 촬영장을 전전하며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기 위해 시체 역할도 마다치 않는 긴 무명 시절을 보냈다. 1978년 개봉한 '취권'과 '사형도수'로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책은 곳곳에서 성룡의 '영화론'을 드러낸다. 배우는 물론 제작자로도 나선 성룡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넘어서야 했던 큰 벽은 앞서 홍콩영화계에 강렬한 족적을 남긴 이소룡이었다. 이소룡이 사망한 후 홍콩영화계는 제2의 이소룡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때 성룡이 한 말은 이렇다. "이소룡은 싸울 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특징이죠. 분노를 표현하고 기선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싸우다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찡그리는 건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려는 거죠. 관객들은 이소룡을 초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단점도 많고 불가능한 것도 많은 사람 말이에요.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협이나 영웅은 더더욱 아니죠."
마음에 드는 장면을 얻기 위해 대역 없이 스턴트 장면을 찍다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긴 것도 성룡의 지론을 잘 말해준다. '프로젝트 A'(1983)에서는 15m 높이의 시계탑에서, '프로텍터'(1985)에서는 30m 높이의 쇼핑몰 천장에서 뛰어내렸고, '성룡의 CIA'(1998)에서는 21층짜리 빌딩 옥상에서 유리로 된 경사면을 따라 70m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러면서 성룡은 '고난도 스턴트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찍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주성철 씨네21 편집장은 "모든 장면이 디지털로 완성되는 시대에 아날로그 미학의 쾌감을 보여주는 성룡 영화의 명장면들은 세계 영화 역사에 있어 성룡에게 단순한 액션 스타 이상의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고 평가했다.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개인사에 대해서도 성룡은 솔직하게 얘기한다. 특히 성룡은 '첨밀밀'로 유명한 대만 출신 가수 고(故) 등려군과의 연애 시절에 대해 밝혀 이 책의 중국 발간 직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때는 1970년대 말, 장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성룡은 미국 진출작 '배틀 크리크'(1980)를 촬영하고 있었고, 등려군은 공부를 위해 머무르고 있었다. 둘은 디즈니랜드에서 우연히 만났고, 이후 미국에서, 성룡이 '용소야'(1982)를 찍으러 간 대만에서, 홍콩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이어졌다. 그러나 성룡과 등려군은 얼마 가지 않아 헤어졌다. 십여 년이 흐른 1995년 5월 성룡의 비서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성룡을 찾는 등려군의 전화였다. 며칠 후 홍콩에 돌아온 성룡은 비서가 남긴 메모를 봤지만, 다시 연락하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성룡은 등려군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성룡은 여배우 우치리와의 불륜 사건에 대해서 밝히고, 최근 이슈가 됐던 아들 방조명의 대마초 사건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성룡의 생애를 아우르는 100여 장의 사진도 책의 볼거리다. 또 책 뒷부분에는 8살 때 출연한 '대소황천패'(1962)부터 목소리 출연을 맡은 '쿵푸팬더3'(2016)까지 성룡의 필모그래피가 적혀 있다. 책 맨 앞과 맨 뒤에는 149명의 책 추천사가 실려 있다. 유덕화, 홍금보, 오우삼 등 홍콩 영화계의 동료는 물론 이병헌, 김희선, 최시원 등 성룡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한국 스타들도 글을 남겼다. 664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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