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자란 권역을 상징하는 여러 표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원자력 벨트'다. 태어나기 전부터 원자력발전소는 고향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원전 때문에 먹고산다'거나 '원전 때문에 발전이 안 된다'는 정반대의 이야기 속에서도 원전은 여전한 현실이다.
반면, 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늘 감성적이고 비현실적이다. 후쿠시마 사고 등으로 원전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모두 알게 됐지만, 사고 위험과 안전의 문제는 일각의 얘기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외부에서는 우리 지역이 원전 벨트라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식으로 쉽게 얘기하지만,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고려하면 막연한 위험을 강조하기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차분하고 촘촘한 접근이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원자력은 우리가 쓰는 전기의 30% 정도를 다른 에너지원보다 값싸게 제공한다.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료는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이고, 산업용 전기료는 3분의 1 수준이다. 반면 전력소비량은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상황임에도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지 40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원전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사회적 관심도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집집마다 먹는 음식, 사용하는 물건, 구성원 수에 따라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은 다르더라도, 쓰레기를 배출한 이상 그것을 언제 어떻게 어디에 처리할지의 문제는 모두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가 바로 그렇다. 발전소를 건설해서 발전을 한 이상, 앞으로 원전을 더 가동할지 말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온 나라가 함께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인 1970년대에 원자력발전을 시작해서, 30%의 전력을 원전으로 충당하는 스웨덴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3기의 원전 중 3기를 폐쇄했지만, 적극적으로 원전을 확대해 온 어떤 나라보다 먼저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았다. 40여 년 전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한 결과, 2009년 포스마크(Forsmark)를 최종 처분 부지로 선정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부가 먼저 안정된 지질을 가진 지역을 탐사해 다수의 후보 지역을 선정하고, 해당 지역을 대상으로 처분시설의 안전성과 부가가치를 홍보하면서 지자체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특히 최종 후보지 2개 지역 가운데 여론보다 지질 안정성이 높은 지역을 선택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밀실야합 등의 의혹과 엄청난 반발을 유발할 수 있는 과정임에도, 정부와 지자체의 투명한 소통 및 사회적 합의를 중히 여기는 높은 시민의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웨덴 합의의 키워드는 '투명성'과 '신뢰'다. 정부와 사업자는 최적의 부지에 지하연구소(URL)를 운영해 진보하는 기술 현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현장을 견학하면서 스스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이해를 더해갔다. 정부가 유치 여론이 높은 지역보다 지질 안정성이 더 좋은 부지를 선정하기로 했을 때도 수긍하고 승복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빈국이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전기를 수입해 올 수도 없고, 지형 등 현실적 여건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하게 확대할 수도 없다. 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미래를 꿈꾸는 일과 현실의 격차는 너무 크다. '한국형 스웨덴 모델'을 꿈꿔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당장 2019년이면 월성원전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를 맞는다. 우리 지역에서 먼저 투명한 사회적 합의의 선례를 보고 싶은 것은 그저 꿈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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