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청년님들은 통곡하실라

우리나라 반석에 올린 5·16 55돌

민주화 지상주의 풍토에 묻혀버려

청년실업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오늘은 1961년에 일어난 5'16 55돌이다. '5'16 쿠데타'에 다른 생각을 갖는 시민도 적지 않지만, '혁명성 아니냐'는 소신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드물다. 자칫하면 왕따에 몰매 맞는 분위기다. 지식인 집단일수록 더하다. 지금 5'16은 구박 덩어리 동네북 신세이다. 마치 5천 년 역사에서 잊힌 것처럼 퇴색해가고 있다.

좋다. 55년 전 5'16이 잊힌다 한들,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일련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성과와 '조선인은 안 된다'는 엽전 의식을 성실과 근면의 DNA로 바꾸어놓은 새마을운동마저 역사 속에 강제로 잠들게 하기는 힘들 것이다.

5'16으로 비상대권을 장악한 고(故) 박 대통령은 이듬해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들어갔다. 그러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스탈린이 1928년에 가장 먼저 시작했다. 뒤이어 네루(1951년), 모택동(1953년), 김일성(1957년), 박정희(1962년) 등이 따라했다. 이들 다섯 나라 가운데 경제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앞에 든 4개국은 물론,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도 시장경제론을 믿고 토착화 노력 없이 그대로 수입대체정책을 따르고, 자유무역을 통해 비교우위에 있는 농산물이나 수산물 그리고 지하자원이나 캐내 파는 단순한 개발론에 그쳤지만, 박정희는 달랐다. '조선인의 깡다구'로 수출 위주 정책을 세웠다.

가발부터 내다 팔았고, 조금 기운을 차리자마자 중화학공업, 철강업, 전자산업을 밀어붙였다. 인구 1억 명이 안되면 제철산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세계적인 정석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인구 3천만 명이던 당시, 철광석이 생산되지도 않는 포항 앞바다에 제철소를 세워서 산업체에 자양분을 공급했고, 군부대처럼 밀어붙인 끝에 경부고속도로를 뚫어 산업의 핏줄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5'16 이후 대한민국은 엄청난 발전을 했다. 유신 이후, 3선 개헌 등의 행적으로 비극적 종말로 끝났지만, 정치는 결과임을 감안할 때 5'16 55돌을 맞아 박 대통령의 공과는 엄밀히 따져볼 일이다.

국내뿐 아니다. 지금 르완다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등 아시아 아프리카의 제3세계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를 부르며, 자력 부강의 기초를 새마을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 따라하기의 원조는 등소평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의 실용적 사관을 가진 등소평은 지금부터 35년 전인 1981년, 중국의 제6차 5개년 개발계획 때 스탈린을 버리고 박정희식으로 선회했다. 즉 스탈린식 수입대체정책으로는 13억 중국 인구를 먹여 살릴 수가 없음을 깨치면서 도광양회(韜光養晦, 그믐 달빛에 칼날의 빛조차 감춘 채 실력을 기르는 것)를 기치로 내걸고 박정희식 수출중심정책으로 돌아서 오늘날 시진핑이 대국굴기(大國崛起)라는 중국몽(中國夢)을 꾸기에 이르렀다.

4'13 총선 이후 협치를 다짐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원장들이 청와대 회동을 가졌다. 여기서 야당 원내 참석자들이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공식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곡을 작사한 사람들의 행적이 어떻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청년실업이 10%를 넘어선 국가 존망의 위기에 야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거론할 때인가. 피를 흘려 민주화를 지킨 그 의미에 대해서는 상시불변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야당 지도자가 아시아권에서 일본'싱가포르'대만 등을 다 젖히고 민주화지수 1위를 기록한 대한민국에서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요구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다니, 이 땅의 청년님들이 통곡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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