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고들 한다. 판소리에서 북 치는 사람(고수)이 첫째고, 소리 잘하는 사람은 둘째라는 말인데, 명창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고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북 장단에 맞춰 긴 이야기를 소리(노래)와 아니리(말), 발림(몸짓)으로 표현하는 창악적 서사시다. 대부분의 역할이 소리꾼에게 있음에도 '일고수이명창'이라는 말로 고수를 더 높이 평가한 데는 까닭이 있다.
고수는 북 장단뿐만 아니라 추임새를 넣는다. 얼씨구나, 얼씨구, 얼쑤, 허이, 허, 잘한다. 그렇지!! 같은 감탄사나 조흥사(助興詞)를 넣어 소리꾼이 곡의 흐름을 잘 타도록 하는 동시에, 소리판의 흥을 돋우는 것이다.
추임새는 상대방을 추어올리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고수뿐만 아니라 청중들도 추임새를 넣는다. 말뿐만 아니라 손짓 발짓, 고갯짓, 어깨춤 등으로 소리꾼을 응원하며 함께 공연을 만들고, 함께 취하는 것이다.
판소리의 '추임새'와 서구 음악공연에서 '박수'는 칭찬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손뼉 박수가 잘하는 것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 짙다면, 추임새는 '우리 함께 잘하자, 더 잘할 수 있다'는 '참여적 성격'이 짙다. 박수 치는 사람이 공연의 객체나 평가자에 가깝다면, 추임새를 넣는 사람은 참여자에 가까운 것이다.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리더십 관련 강의도 많고, 책도 많다. 리더십의 종류도 많아 각자에게 맞는 리더십을 키워주겠다는 전문가들도 많고,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고, 모두가 꼭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리더이기를 원하니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고, 리더가 되고자 했으나 리더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팔짱을 낀 채 불평을 터뜨리기 일쑤다. 리더십만큼이나 팔로우십이 중요함에도 한국 사회는 좀처럼 여기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까닭에 '나를 따르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많지만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고수이명창'이라는 말에는 '명창보다 북 잘 치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도 있다. 이 말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리더는 많아도 팔로우는 드물다는 말이 된다.
판소리에서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를 뜻하고, '소리'는 '노래'를 뜻한다. 창악적 서사시라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 역시 한판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가 소리꾼과 청중의 상호 교감작용으로 완성되듯, 우리 삶의 판 역시 리더와 대중의 상호 교감작용으로 이루어진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창을 잘해야 하듯, 공동체에서도 리더는 대중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이해를 구하고, 그 비전을 현실화했을 때 우리가 어떤 혜택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판소리에서 고수와 청중이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 소리꾼에게 힘을 실어주듯, 일상에서 대중도 리더가 더 잘하도록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어 줄 때, '삶의 판'이 제대로 완성된다.
판소리 공연의 목적과 실체는 상호 교감작용을 통해 감동을 얻는 데 있다. 소리꾼이나 고수, 청중 각자의 이름값은 부차적이다. 공동체의 목적과 실체 역시 구성원들의 상호 교감작용을 통한 공동체의 발전에 있다. 청중이 시종 탄식하거나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만 한다면, 그 판소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소리꾼과 청중, 리더와 대중, 선생님과 학생이 눈과 호흡을 맞추지 않고는 높은 완성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 기업, 단체, 가족도 마찬가지다.
'잘난 너 한번 해봐라'며 팔짱을 끼고 돌아선다고 내가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즐거워지는 것도 아니다. 즐겁자면 나도 참여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추임새를 넣을 때 개개인은 모두 리더가 될 수 있고, 도모하는 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추임새 잘 넣는 사람은 아름답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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