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조영남과 베어먼 할아버지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캐나다에 사는 독자가 뉴욕에 거주하는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시를 통해 오롯이 전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자신은 표현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표현할 줄을 몰랐던 감상들을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듯 시로 말해 주어서 감사하는 것이었다.

요즘 한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조영남 씨의 화투 그림 대작 사건은 미국 교민 사회에도 상당한 관심 사안이다. 조영남 씨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100% 자신의 창의력에 근거한 것이니 모두 자신의 창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품의 콘셉트를 잡고 구상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어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 구상은 물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출하는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캐나다의 독자는 나와 비슷한 이국생활에서의 감상을 가지고 있었는가보다. 그러나 그분은 그 콘셉트를 표현하지 못했고, 나는 시를 통해 그 콘셉트를 설명해 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일상적 콘셉트도 자신만의 색깔로 빚을 수 있고, 그것을 공감의 단계로까지 이끌기 위해 예술적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기에 화가는 수많은 화폭에 덧칠을 하고, 시인은 시상에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작곡자는 수백 장의 악보를 그렸다 지웠다 하는 것이다.

또 조영남 씨는 '조수와 함께 일하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는데, 조수와의 협업은 르네상스 시절에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때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기법을 전수해주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작품의 수익금을 제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또 설치 미술과 같이 규모가 방대한 작품이나 공공 시설물의 그림 등 필요에 따라 여러 사람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반드시 협업한 자들의 이름을 밝혀야 하며, 이것은 합법적이었다.

특히 조영남 씨의 작품은 그것이 상품화되어 대중에게 팔렸기 때문에 법적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 고대의 미술품은 작가의 명성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았다. 그러나 14세기 말부터 작가의 유명세가 작품 가치 척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작품에 작가가 사인하는 풍속도 생겨났다.

서서히 미술계로 유입된 물질주의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미술품은 갤러리나 경매장을 통해 돈벌이와 재테크의 방편으로 이용되기까지 한다. 작품의 본질보다 작가의 지명도에 따라 그 예술성이 저울질당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베어먼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 가난한 무명화가로 살아가던 베어먼 할아버지는, 폐렴에 걸린 화가 지망생 소녀가 날마다 창밖의 담쟁이 잎을 바라보며, 그 잎새가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절망 속에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느 날 밤, 담쟁이 잎을 모두 떨어뜨릴 기세로 매서운 폭풍우가 몰아치자, 할아버지는 소녀를 위해 노랗고 푸른 물감을 푼 팔레트를 들고 담벼락에 올라 어떤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을 나뭇잎 한 장을 그린다. 그리고 밤새 비바람을 맞으며 작업을 마친 그는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된다.

폭우가 그치고, 커튼을 연 소녀는 담벼락에 꼿꼿이 달려있는 마지막 잎새를 발견하고, 베어먼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새로운 인생의 소망을 가지게 된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그림을 그린 베어먼 할아버지. 오늘은 각박한 인생을 걸어가는 우리들을 위해 따뜻한 걸작 하나 그려줄 베어먼 할아버지 같은 화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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