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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바리와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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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사회인 야구팀 단체 대화방에 감독님이 "쪼춤바리 좀 했나?"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젊은 선생님이 "쪼춤바리는 일본 말인가요? '나와바리, 시다바리, 오케바리' 이런 말하고 느낌이 비슷한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일본어 선생이 답하기를 '나와바리'는 일본 말이 맞는데, '시다바리'라는 말은 'したばり'(下張)라고 해서 초벌 도배하는 것을 말하고, 사람들이 흔히 '조수'라는 말로 쓸 때는 그냥 '시다'(した)라고 쓴다고 했다. '시다바리'는 '시다+바리', '오케바리'는 'OK+바리'로 분석될 수 있겠는데, 이럴 때 쓰는 일본어의 '바리'는 없다고 했다.

갑자기 대화방이 학구열로 불타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바리'의 정체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아는 대로 '쪼춤바리'는 달리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쪼치다'의 변형 명사형 '쪼춤'에 '바리'가 붙은 것으로 분석이 되는데, '바리'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러고 난 뒤 '바리'라는 말이 사용된 예들을 한번 찾아보았다. 금방 떠오르는 것은 절에서 공양할 때 쓰는 그릇을 '바리'라고 한다. 어릴 때 어른들은 "짚 한 바리 싣고 온나."라는 말을 했는데, 이때는 짐을 세는 단위로 쓰인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둔하고 미련한 사람을 '데퉁바리, 뒤틈바리'라고 했는데, 이때는 '데퉁'스럽다는 속성을 가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데 사용된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미자바리', '꽁지바리'라는 말도 쓰는데, 이것은 '미자(항문에 연결된 창자를 뜻하는 미주알의 경상도 사투리)+바리', '꽁지(꼬리 또는 꼴찌)+바리'로 분석이 된다. 이 경우에는 '쪼춤바리'처럼 앞말에 별 뜻 없이 붙여 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시다바리'나 '오케바리'는 일본어나 영어에 우리말인 '바리'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원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말을 일본어라고 볼 이유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닭도리탕'에서 '도리'가 새를 뜻하는 일본어 '도리'(鳥'とり)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닭볶음탕'으로 순화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요리연구가들은 '닭볶음탕'이 볶는 방식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닭도리탕'에서 '도리'는 닭을 요리하는 방법에 대한 말일 텐데 '새'를 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도리'가 대충 토막을 내는 '도리치다'에서 온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본어라고 보는 것보다는 설득력이 있다. 일본어의 잔재를 없애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일본어와 비슷하면 무조건 우리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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