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오랜만에 한 선생님을 만났다. 시립교향악단에서 오랫동안 연주하시다가 퇴직한 지 몇 해가 지났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근황을 묻자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정말 행복해. 나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
퇴직 후에는 음악회와 전시회를 자주 다닌다고 했다. 평생 음악을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음악은 과연 연주하는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듣는 사람의 것일까.
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케스트라 연주는 생각보다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 지휘자의 해석을 이해하고, 동료 단원들의 호흡을 듣고, 음악의 흐름 속에서 서로의 소리를 맞추어야 한다. 지휘자와 단원, 그리고 음악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일 때 비로소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만들어진다. 무대 뒤의 긴장 또한 청중은 쉽게 알지 못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또 다른 기쁨도 있다. 심포니를 연주한다는 것은 거대한 음악의 한 부분이 되는 일이다. 수십 개의 악기가 함께 만들어내는 그 웅장한 소리 속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감각은 오케스트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 거대한 음악 속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감동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또한 오랫동안 시립교향악단에서 연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가끔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이나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 푸치니 오페라 '마농 레스코'의 전주곡을 듣고 있을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다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해 보고 싶다.' 심포니와 오페라 음악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울림은 오케스트라 안에 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에게 음악은 때로 책임이고 긴장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순수한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같은 음악이라도 어느 자리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연주자는 악보와 지휘자의 해석, 동료 단원들의 호흡 속에서 음악을 만들어 가고, 청중은 그 음악을 자신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받아들인다.
연주자는 소리를 만들어내지만 그 소리가 의미를 얻는 순간은 청중의 마음 속에서다. 음악은 연주되는 순간보다, 기억되는 순간에 더 오래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음악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더라도 그 의미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 어떤 사람에게는 풍경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억이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같은 연주를 듣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마음 속에 그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본다. 음악은 누구의 것일까. 연주자의 것일까, 아니면 청중의 것일까. 어쩌면 음악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음악은 연주자의 손에서 시작되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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