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신공항, 공약 파기 아닌 실천이라는 청와대의 뻔뻔함

박 대통령, 신공항 관련한 약속 지키지 못해

지역민에게 자신의 잘못 인정하고 사과해야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22일 김해공항 확장 결정과 관련해 "(대통령의) 공약 파기가 아니다. 약속을 지켰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사실상 김해 신공항이 되는 것이므로 대통령선거 당시의 약속을 지켰다는 뜻이다.

궤변 정도가 아니라, 정말 후안무치한 수준이다. 대구'경북과 부산이 편을 나눠 10년 넘게 밀양이니 가덕도니 하면서 처절하게 싸웠는데 갑작스레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대구'경북과 부산 사람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을 지켰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구'경북의 남부권신공항 범시도민추진위원회가 성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 파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사과하라"고 주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공약이나 약속은 상식과 보편타당성이 전제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2011년 당시 이명박정부의 신공항 무산을 맹비판하며 신공항 추진을 강조했고, 2012년 대선에서도 지역에서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우리나라가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되지 않겠느냐"는 발언도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과 보편타당성을 가지려면 지역민이 꼽은 후보지 중 한 곳을 선택했어야 옳았다. 김해공항은 이미 10여 년 전에 소음, 안전성, 확장성 문제로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판정 났기에 새로운 관문공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해공항 주변의 대규모 개발계획과 짧은 활주로 길이, 산악 지형의 안전성 문제 등 입지적 한계를 볼 때 차기 정권에서 또다시 신공항 논란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꼼수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결국 박 대통령은 신공항과 관련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공약 및 약속을 파기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약속을 지켰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댔다. 옛말에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는데, 가히 언어도단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발언과 생각을 전하는 자리인 만큼 박 대통령의 생각이 이렇다고 한다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민주평통 해외 자문위원과의 행사에서 신공항에 대해 언급했지만, 시도민의 분노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김해 신공항 건설이 국민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당사자 합의, 외국 전문기관 의견 등을 존중했다"고 했다. 이 발언은 '공약 실천'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면서 정치권과 영남권에서 제기되는 공약 파기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대구'경북민은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해도 풀리지 않을 만큼 분노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의 정당성을 앞세우며 돌파 의지를 밝힌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결정이 잘못됐으며 박 대통령이 공약 및 약속을 파기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자 한다. 박 대통령은 제대로 된 공항을 갖고 싶다는 지역민의 꿈과 열정을 저버렸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준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영남권 신공항 무산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말장난을 하는 것보다 국민에게 허심탄회하게 다가서는 것이 그나마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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